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의 출가 - 정호스님

가람지기 | 2007.11.06 13:01 | 조회 3117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정호입니다.

저는 6년 전 이맘때 출가 했습니다.

저의 출가는 어머니의 서원과 은사스님의 기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께선 원래 절에 잘 다니시는 분이 아니었는데 저의 은사스님을 만나신 후론

절에 아주 열심히 다니기 시작 하더니 급기야 딸을 출가 시키겠다고 원을 세우셨고

어린 시절 부터 공책을 사다주며 다라니도 쓰게 하고 스님께 책도 빌려와서 읽기를

강요 하곤 하셨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스님이란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는데

하루는 노스님께서 서울에 오셔서 저에게 스님 될 생각이 없는지 물어 보셨습니다.

물론 저는 단칼에 거절 했습니다.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저의 머릿속에선 노스님의 말씀이 떠나질 않더니 나중에는 내가 과연 스님이 될 수 있을까 노스님께선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씀을 하신 걸까라는 의문까지 갖게 되면서 이런저런 망상을 하다가 기도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100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 저는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출가 후 안 사실이지만 노스님께선 절에 오는 젊은 처녀들만 보면 누구에게나 출가를 권하고 계셨습니다. 당신 가시는 길이 그저 좋아서 젊은 처자들이 시궁창에 빠지는 게 싫을 뿐 이셨는데 그렇다고 저한테 특별히 더한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시절인연이 도래해서인지 저는 기도 회향 후 바로 출가 했습니다.


하지만 절에서 산다는 건 만만하진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망상들과 알 수 없는 원망으로 저는 하루하루 눈물로 시간만 보내다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딱 100일을 채우고 아무 미련도 없는 듯 당당하게 말입니다.

그런 제게 노스님과 은사스님께선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하시고는 보름동안 아무런 말씀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보름이 지나도 저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니 그냥 보고만 계시던 어머니께서도 눈물로 저를 설득하셨고 은사스님께선 저를 조용히 부르셔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정호야 한번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떻겠니? 그냥 뭘 하고 싶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조금 버리고 난 태어난 적이 없었다, 생각하고 나와 같이 공부 해보는 게 어떻겠니?” 라고 저를 설득하셨고 저는 그 자리에서 울면서 잘못했다고 다시 머리를 깎겠다고 했고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누구도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지만 힘들기만 했던 행자시절을 보낸 저는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아직까진 마음이 한곳을 향해서 있습니다.

그렇다고 행자시절보다 더 큰 발심을 한 것도 아니고 확철대오 라는 크나큰 서원을 세우지 못했지만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건 열심히 살고 싶다는 작은 원을 세웠습니다.


치문 때 강사스님께선 지혜 없이 열심히 사는 건 누구에게든지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아직까진 지혜를 갖추진 못해서 피해를 주는 일도 많지만 언젠가는 지혜가 갖추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힘쓰고 힘쓰겠습니다.

대중스님들께서도 이 가을에 힘쓰고 힘쓰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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