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사물소리 -여금스님-

가람지기 | 2007.11.07 12:28 | 조회 2813

하늘이 한없이 높아만 갑니다. 마주 보이는 호거산 정상에 물든 산과 흰 구름, 파란 하늘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펼쳐져 있는 모습에 제 마음도 편안해지는 계절입니다.


이렇게 맑고 건조한 날씨가 높은 창공에 구명을 뚫은 듯 계속되는 가을은 1년 중 가장 법고(法鼓)소리가 절정을 이룹니다. 올해는 비가 유난히 많았기에 여름 내내 머금었던 습기를 뱉어내고, 가죽은 그지없이 팽팽해지기 때문이겠지요. 살짝 내려치기만 해도 그 반동이 ‘퉁 투둥 퉁퉁’ 여진이 남는 듯합니다.

그래서 법고를 치는 스님의 손놀림이 한결 가벼워 보이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즐거워집니다. 저 역시 후원 일을 마칠 즈음 들려오는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 소리가 어쩐지 정겹고 대종(大鐘) 소리는 가슴을 울리며 더 멀리 퍼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저녁으로 예불 전에 사물을 치는 까닭과 관련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흔히 ‘법고는 들짐승, 운판은 날짐승, 목어는 물짐승, 그리고 대종은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 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마음 법을 근본으로 합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말하는 짐승들이란 곧 마음 속 중생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법고는 들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들짐승들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다투는 것이 일쑤지요. 그러나 법고의 바싹 말린 가죽을 때려서 울리는 소리를 잘 듣다 보면 투쟁심이 쉬어집니다. 평화롭고 고요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들짐승이 제도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구름 모양의 쇠로 만들어진 운판을 치면 날짐승이 제도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새들이 날아와서 듣고서 제도된다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날짐승이란 저에게는 바로 나 자신의 들뜬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새와 같이 마냥 들떠서 정처 없이 헤매는 이 마음이 날카로운 쇳소리를 들으면서 차분히 가라앉게 됩니다. 그래서 예불 전 마지막으로 울리는 것이 운판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한편 물고기 모양의 목어 소리는 축축하고 우울한 마음 혹은 현실을 회피하려는 마음을 끌어 올려줍니다. 마른 나무 둥지 속에 부딪치는 건조한 음이 우울한 마음을 달대 주는 것 같습니다. 25여명의 대중들과 함께 수행의 길을 가는 것은 저에게 무한한 기쁨입니다.

그러나 공동체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한결같이 구도의 생활을 함에 어려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지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이렇게 지치고 고독할 때 목어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고 긍정의 힘이 마음을 북돋아 줍니다.


마지막으로 대종은 쇳물을 펄펄 끓여 식혀서 만듭니다. 유년시절 포항제철에 갔을 때 얼굴까지 열기가 느껴지는 들끓는 용광로가 떠오릅니다. 벌겋게 달궈진 쇳물이 철판모양의 금형에 부어진 후 차가운 물속에서 한순간에 ‘취’소리를 내며 식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활화산과도 같은 쇳물이 폭발하는 화, 분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종 소리를 듣다 보면 끓는 마음이 식어지곤 합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성냄과 분노가 곧 지옥중생이며 이러한 분노심을 가라앉히는 것이 제도인 것입니다.

<반주삼매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마음을 알지 못하니 마음이 있어도 마음을 알지 못한다.”

마음에 상이 일어나면 곧 치(痴)요, 마음에 상이 없으면 곧 열반입니다. 공을 알고 보면 모든 것에 하찮은 상념이 없어집니다. 거울을 삼기름으로 닦으면 저절로 영상이 보입니다.

그 영상이 거울 속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밖에서부터 거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기름으로 맑게 닦음으로서 나타나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스스로 마음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망상이 있기 때문이니 그 마음이 치심입니다. 망상이 없으면 곧 열반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 ,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곧 수행의 길이기도 하지요. 마음에 꽃을 품으면 몸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법이요. 마음에 독을 품으면 아무리 잘 꾸미고 치장하여도 구린내가 나는 것이 진리일 것입니다.

저처럼 오늘 법당에 앉아 또는 도량 어디에서든 사물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 수행자의 고독한 마음, 한순가에 불길과 같이 일어나는 분개심 모두 잠재우시고 연꽃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 신심으로 기도하고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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