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말과 침묵을 조절 할 줄 아는 수행자 - 법철스님

가람지기 | 2007.11.07 13:35 | 조회 3200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법철입니다.

‘입 뒀다 흉년에 밥 빌어먹을래?’ ‘법철 스님 입을 쓰세요.’

대중스님 흔히 입은 화의 문이니 입조심하고 말을 삼가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은 과묵한 자기를 좋아하고 침묵을 수행으로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입을 써야 할 때는 반드시 써야합니다. 저는 입을 쓰라는 충고를 많이 듣곤 하는데요, 제가 말을 안해서가 아니라 써야할 때 꾹 다물고 쓰지 않아서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전라도 촌에서 쭉 살다가 경남 양산시에 있는 선원에서 위탁 행자 생활을 했습니다. 사미니계를 받고 가을 산철 해제를 한 뒤 주지스님께서 “계도 받고 지금은 한가하니 은사스님께 인사드리고 오거라” 하셔서 저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부산역 맞은편에 내렸습니다.

‘부산역’이라고 써 있는 큰 건물이 눈앞에 보였지만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차들은 쌩쌩 달리는 도로에는 횡단보도도 육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건너야할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볼까도 했지만 바로 눈앞에 ‘부산역’이 있는데 아마 어딘가 횡단보도가 있겠지 생각하며 위로도 쭉 올라가보고 아래로도 쭉 내려가 보며 도로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살펴도 건널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이곳 사람들은 그냥건너가나? 생각하며 그냥건널까 생각도 했지만 차마 머리 깎고 두루마기 자락 휘날리며 무단횡단은 할 수 없어서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용기를 내어 “저기 어떻게 건너야 되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가씨는 제 옆을 가리키며 “ 지하도로 건너세요.” 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서야 세상에 지하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1분도 안되어서 부산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진작 물어 봤더라면 시간나이도 하지 않았을 테데 말입니다. 이럴 때 저희 은사스님께서는 ‘입 뒀다 흉년에 밥 빌어먹을래?’하고 꾸중 하셨을 것입니다.

대중스님들께서도 혹시 저처럼 입을 써야 할 때 쓰지 않고 침묵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침묵이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부끄럽고 힘들다면 한번쯤 내가 스님이라는 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이가 나를 업신여길까봐 묻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거나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묻지 않는 것은 아만이요, 어리석음의 소치입니다.

「열반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법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의문이 나는 점이 있다면 주저 없이 질문하도록 하라. 의문과 의아함을 품고 있으면서도 질문하지 않고 자기의 좁은 편견으로 이 문제에 대한 정의를 내려서는 안 된다.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질문하도록 하라.”하셨고 또 경전을 읽다보면 부처님께서 모르는 것을 질문하거나 대중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했던 적절한 질문들에 대해서 ‘선재 선재라 선남자여’하시며 기뻐하시고 자비로써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대중스님 ‘성불’이라는 간판이 눈앞에 보인다고 해도 그 곳으로 어떻게 하면 도달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만심으로 제때에 입을 쓰지 않고 허송세월만 보낸다면 참다운 수행자가 아닙니다.

저희들은 이제 막 이 길로 들어선 초심자입니다. ‘부산역 앞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 만큼이나 많은 경계가 우리 앞에 놓여있을 것입니다.

혼자서 그 경계를 물리치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이루신 불보살님과 선지식의 지혜를 빌려 법을 구하고 바른길을 묻는다면 헤매임 없이 깨달음의 길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리달마의 말씀을 전할까 합니다.

‘만약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할 때 그대의 말은 자유롭다. 그대가 알지 못할 때 그대가 침묵을 지키더라도 그 침묵은 그대의 무지에 묶여 있다.’


대중스님!

말과 침묵을 조절 할 줄 아는 수행자 됩시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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