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우연스님-

가람지기 | 2007.12.15 12:05 | 조회 3065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절에 살고 있던 여섯 살 여자아이가 꿈을 꾸게 됩니다. 큰방 가운데에 앉아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아이의 사방은 가사를 수하신 스님들의 모습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습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긴장한 상태로 앉아 있는데, 한 스님도 빠짐없이 큰 노스님부터 차례대로 다가오시더니 크고 따뜻한 손으로 보듬어 주시고 곧바로 만원의 지폐 한 장을 쥐어 주십니다. 어린 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생겨난 큰돈을 보며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스님들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지켜보시기만 합니다.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하는 찰나에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곧바로 같이 살고 있던 한 스님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얘기를 다 들으신 스님은 “나중에 조금 더 크면 꼭 스님이 되어서 꿈에서 만난 부처님들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후로 여자아이는 세월이 지나 여섯 살의 꿈을 잊지 않고 출가를 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안녕하십니까? 그 제자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대교반 우연입니다.

대중스님은 일상생활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계십니까? 혹시 매 순간 관심이 없이 지나치거나 불만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저는 앞에서 말했듯이 부처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수행자가 되었지만, 매 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고 하기 보다는 불만 속에서 살아왔던 날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절에서 자란 저는 은사스님의 관심과 사랑인 줄 알면서도 엄격한 가르침이 못마땅하여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해서 스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깎아 강원에 들어와서도 수많은 울력과 상․하판의 관계, 심지어는 막내라는 위치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고 있던 저는 그야말로 이미지도 점점 변해가고 인격에도 빨간불이 깜박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쯤, 은사스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연아. 네가 그래도 절집에서 오래 살아 온 것과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어서, 그 성격에도 부처님 덕분에 살아 갈 수 있는 것이지, 딴 데 같으면 어림도 없다. 그러니 너무 까불지 마라. 까불면 언젠가는 큰 코 다친다!”

이러한 은사스님의 말씀에 문득 제가 처음 부처님 앞에 섰을 때, 내 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 항상 감사하며 초심을 잃지 않는 수행자가 되리라 했던 다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제 자신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잘났길래, 오로지 내 힘으로 여기까지 살아온 것도 아니면서, 남에게 공덕을 베풀지는 못할망정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줬는지... 그저 나를 스쳐갔던 모든 이들을 생각하며 소리 없이 참회의 눈물만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무슨 일이든 긍정적인 마음으로 행해 나가는 것이 내가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또 한 번 굳게 다짐하여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 하고, 남에게 말을 할 때엔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내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보니 마음도 한결 여유로와져 편안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부처님 법 만나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제가 주위의 모두로부터 받아 온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는가를 돌이켜보면 한참은 멀었다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 친딸 못지않게 아낌없는 사랑으로 키워주신 은사스님, 부족한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여러 어른스님들, 지중한 인연으로 만나 철없는 막내인 저와 늘 함께 해 준 49명의 도반 스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분들이 있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대중스님! 지금 나에게 누군가가 베풀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여 받기만 한다면, 내 자신은 아상과 아만으로 가득 차 점점 하락된 삶을 살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라면, 심지어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공기와 물, 음식을 포함한 모든 만물에 대해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도 모자랄 것인데,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라 하여 어찌 불만 속에서 생활하려 하십니까. 청화스님께서 열반하실 때 남기신 게송으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이 세상 저 세상

오고감은 상관치 않으나

은혜를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네.


대중스님 모든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수행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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