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마음의 참 주인공 -현지 스님-

가람지기 | 2007.12.15 12:17 | 조회 2843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현지입니다.

코끝에 와 닿는 얼음장 같은 추위가 매섭다고 하기 보다는 청량한 느낌마저 주는 것은, 운문사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겨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4년의 강원생활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아쉬운 것이 비단 계절뿐이겠습니까? 저의 생활 하나하나가 모두 아쉬움과 후회로 얼룩진 지난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작도 중간도 아닌 마지막에 와서야 새삼 후회를 하게 되는 이 어리석음마저도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난 그 순간을 살았는가?

난 내 삶에 주인공으로 살았는가?

난 다른 이들과 어울려 함께 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이 작아지는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공이 되면 그 서있는 곳은 모두 진실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중국의 임제스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되새기며 지난 한 해를 반성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난 그 순간을 살았는가?”

三界唯心이요, 三界唯識이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 법계가 오직 내 마음 가운데 있고 내 생각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극락이나 지옥도 바로 각자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더 많은 행복을 찾기 때문에 정작 지금 이 곳이 힘든 곳이 되고 맙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 『파랑새』를 기억하실 겁니다. 신비의 새인 파랑새를 찾아 멀고 먼 길을 떠났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온 남매는 바로 집 앞의 뜰에서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는 눈부신 파랑새를 발견합니다. 행복은 바다 건너 저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에서 빛나고 있는데도,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우리의 마음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을 후회하고,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두려워하며 다른 곳에 마음을 뺏기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모시는 예불시간, 온전히 ‘지심귀명례’하지 못하고, 마음은 오전에 있었던 반 스님과의 일들로 뒷걸음치는가 하면, 아침 수업시간에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수업 후에 해야 할 잡다한 일들로 내걸음치고 있습니다. 하루 중 한 순간도 그 순간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게 던지는 다음 질문은 “난 내 삶에 주인공으로 살았는가?”하는 문제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 속에서도 늘 진실하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으로 살아간다면, 난 그 자리의 행복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임제스님의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저는 늘 변화하는 인생의 흐름 속에서 고통과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주인이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을 잊고서 다른 곳과 다른 사람만을 향하여 탓하고 원망하곤 했습니다. 또한 도통과 즐거움을 받는 주인도 바로 “나”임을 망각하고 무조건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려는 나약함을 보였습니다. 아무도 나의 힘든 점을 해결해 줄 수 없고, 단지 돕는 자에 불과할 뿐인데도 말입니다. 힘들 때 그리고 행복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하게 나 자신이 되어서 그 순간의 나를 잘 관찰해야 한다는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는 나에게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곧 내가 나의 주인인 것입니다. 마지막은 “난 다른 이들과 어울려 함께 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홀로 발생되어 존재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연기법에 의해 서로가 함께 생하고 존재하며 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면, 그 곳에 분별이 없는 진리의 세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감싸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에너지가 공유되면서 그 자리에는 행복의 에너지가 극대화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처한 그 곳에서 조금 더 마음을 비우고 양보하며 함께 호흡하려고 애 쓸 때, 그 순간 행복하고 평온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종 저는 양보하기 보다는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남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서 내 마음을 탐욕에게 자리를 내어주곤 했습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서 있는 곳이 행복과 진리로 하나 되는 자리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대자유속을 노니는 진정한 마음의 주인공이 되는 길은 이렇게 자신을 놓아버리고, 탐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도 능히 행하면 다른 이들과 어울려 함께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대중스님! 지금 이 순간 마음의 참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이 계절의 새하얀 눈꽃만큼이나 성성하고 환희로운 정진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시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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