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수행자의 역할 -성제스님-

가람지기 | 2007.12.15 12:26 | 조회 3193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스님! 강원에 꼭 가야 하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럼, 전 모 강원으로 갈래요”

이 때 갑자기 은사스님께서는 버럭 화를 내시면서,

“운문사외엔 절대 안 된다. 복 없으면... 가고 싶어도 못가는 곳이다. 그 모 강원에 갈 것 같으면 강원에 아예 가지마라!”

“네에..! 운문사 갈께요 ”


안녕하세요!

이러한 은사스님과의 심오한 문답을 거쳐 어느 덧 사교반이 된 성제입니다.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 보다는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적인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뜻한 한 잔의 차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도반의 작은 배려와 정다운 미소만으로도 그 날 하루 마음의 양식을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은 것을 차지하고 살면서도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따뜻하고 살뜰한 정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마치 서바이벌 게임처럼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불안 초조해하며 살아가고 있고 더 빠르고 빠른 세상을 갈구하며 문명의 노예가 되어 안타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의 행복감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정신세계는 점점 황폐해지고 혼탁해져서 각종 정신병과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이러한 얘기는 이미 다들 잘 알고 있기에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마음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수많은 이들의 영적 스승이 될 우리 수행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생의 고통을 해소하는 법에 관한 것이고, 그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 수행자에겐 세상을 맑힐 수 있는 무한한 역량이 잠재해 있습니다. 얼마 전 한 보살님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님! 법당에 가지런히 놓인 털신만 보아도 신심이 납니다. 그리고 다 닿은 신발 뒤축을 헝겊으로 꿰매 신으시는 그 알뜰함에 코끝이 찡합니다. 스님은 너무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속세에서 벗어나 공기 좋고 깨끗한 도량에서 부처님 공부하시니... 저도 다음 생엔 꼭 스님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저를 부러워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간 사람들은 스님들의 소소한 것 하나 하나에도 감동받고 신심을 냅니다.


또한 수행자 각자 나름대로 부처님의 정법에 의지하면서 수행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휴식처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중스님들도 다 아시는 사리암 콘테이너 보살님에 관한 에피소드인데, 아마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충 짐작가시는 분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작년 어느 쉬는 날, 도반들과 함께 산행을 마치고 사리암 주차장으로 내려오던 길이었습니다. 목도 마르고 배도 약간 출출하여 콘테이너 가게에 들렀습니다. 예전부터 이미 스님들에게 돈을 받지 않으신다는 보살님 얘기를 익히 들은 터라 우린 어떻게 해서든 돈을 내기위한 007작전을 짜고 조심스럽게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음료수와 누룽지, 쌀과자 등을 골라 계산을 하려고 하니까 역시 예상대로 보살님은 돈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작전 개시! 먼저 우리 중 눈치 빠르고 민첩한 도반이 초스피드로 돈을 선반위에 던져놓은 후, 우린 마치 액션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도망치듯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한 참을 달린 후, 숨도 차고 이쯤하면 더 이상 쫓아오시지 않으시겠지, 하며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에, 이런! 달리기를 못하는 제가 보살님에게 그만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잡힌 것에 대한 놀라움은 잠깐이고, 절 더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버선발로 쫓아오신 보살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전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돌려 주기위해 얼마나 힘들게 달려오셨을까, 하는 생각에 보살님께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전 더 이상 그 돈을 사양하거나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내가 이 공양을 받을만한 그릇은 못 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스님들께 보시하려는 보살님의 지극한 마음을 잊지 않고 열심히 수행한다면, 그 보시의 공덕이 헛되지 않으리라’ 고 다짐을 하며 결국 그 돈을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대중스님! 이 에피소드와 같이 우리는 스님이라는 모습 하나 만으로도 친소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보시와 호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 이러한 경험을 할 때 마다 한 수행자의 수행력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는지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 받게 됩니다.


대중스님!

순수한 노력 뒤에 평화로움이 찾아오며,

오랜 수행 뒤에 바람 속에 펄럭이는 옷자락처럼

자유가 뒤따라온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정정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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