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를 짊어지고는-보원스님

운문사 | 2006.05.30 10:42 | 조회 3001

처음 우리가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고 마지막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린 빈손으로 왔으며 빈손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린 대부분 태어남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본래 비었던 손을 가득 채우는 데에만 급급해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무한히 붙잡는 삶, 붙잡음으로 인해 행복을 얻고자 하는 삶.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고 갈구하려고 하는“붙듦”그 속에서 우리가그렇게 버리고자 갈망하는 苦. 괴로움의 시작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붙듦”으로 인해 행복하고자 한다면 그 행복은 절대 이룰 수 없음이 진리의 참 모습입니다. 인연따라 잠시 나에게 온 것 뿐이지 그 어디에도 내 것이란 것은 있지 않습니다.

本來無一物이듯이...

그러나 우리들은 인연따라 잠시 온 것을“내 것”이라하여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바로 내 것이라고 꽉 붙잡으려는 그 속에서 괴로움은 시작됩니다.“내 것”을 늘림으로 인해서는,“잡음”으로 인해서는 결코 행복이며, 자유, 진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도안 내가 얻고자 했던, 붙잡고자 했던 그것을 놓음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화에“여우가 목 좁은 항아리 속의 꿀을 먹기위해 한웅큼 잡았습니다. 목이 좁은 항아리속의 것을 웅켜 쥐고 있으면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놓았을 때 손은 자유롭듯이... 물질 만능시대에 살면서 소유하지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정말 우리는 옷 두벌이상이 필요할까요? 조금만 가지라 하는데, 어디까지가 “조금”일까요...

하나를 가지면 하나의 벽이 생깁니다. 그러나 물질은 어쩌면 떠나기 쉬운 것인지도 모릅니다.“나”를 생각하고,“나”를 소중히 하는“나”로 가득한 이 마음을 다 버리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따스한 걸 사랑하는 “나”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나”맛있는 걸 좋아하는“나”를 놓음이 전체를 갖는 것입니다.“나”“내것”이라는 울타리를 놓아 버려야 진정 내면의 “참나”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놓음... “放下着”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과 어쩌면 정면으로 배치되는 삶이기에 힘들고 어려운 듯 느껴집니다. 그러나 “放下着”그 속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放”은 “놓는다”는 뜻이며 “着”은 “집착, 걸림”을 의미합니다. 즉 본래 空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온갖 것들에 걸려 집착하는 것을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나”“내것”에만 끄달려 이를 붙잡으려 하는 어리석은 我執을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下”라는 것은 “아래”라는 의미이지만 그 아래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곳, 그 아래에 있는 뿌리와도 같은 우리의 참 佛性, 한마음, 본래면목, 주인공... 참 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일체 모든 끄달림, 걸림, 집착을 용광로와 같은 한마음 내안의 참나의 자리에 몰록 놓으라는 것입니다.

금강경에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따이 마음을 내되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입니다. 마땅히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게으르지 말고 살아갈 일입니다. “放下着”놓고 가는 이는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으며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기에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항상 如如합니다. 함이 없이 늘 묵묵히 일을 해 나갑니다.

이렇듯 함이 없이 해야 합니다.

입보리행론 제8장 선정품에는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바위굴이나 텅빈 절간에서

또 나무밑에서 머물며

결코 지나날을 되돌아보는 일 없이

언제나 집착없이 머물 수 있을까?

주인없는 대지와 자연스레 열린 공간에서

자유를 즐기며 애착을 떠나 언제나 나는 머물 수 있을까?


발우 한 개, 주워모음 물건 몇 가지

누구든 원치 않을 해진 옷을 걸치고

이 몸 가리려 하지 않으며

두려움 없이 머무는 그런 날이 언제나 올 것인가?

송장터에 들어가

그들의 해골과 나의 몸은

모두 썩어 없어질, 아무것도 아님을

언제나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이 밝은 가르침 속에 그 어떤 어려움도 어령무이 아닌 수행의 재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크나큰 수행을 내게 주신 거룩하신 부처님께 至心歸依합니다.

부처님의 밝으신 가르침에 歸依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밝게 실천하는 모든 수행자님들에게 歸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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