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라-지형스님(사교반)

운문사 | 2006.06.19 13:31 | 조회 2952

호거산의 녹음이 짙어지는 만큼 수행이 익어가고 계십니까?

공양 할때나, 잠을 잘 때나, 간경할 때 또는 도반을 대할 때에 바른 견해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지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바로 이 순간, 생각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왜 이러한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의문을 자꾸 일으키다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면의 나와, 외면으로 보여지는 나, 즉 주관과 객관의 분별의식 때문에 중생은 부처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고, 수행자로써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수행자라는 이 회색먹물 옷을 어떻게 입느냐하는 또 다른 생각이 내 의식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겁 생에 쌓아 온 나의 두터운 업습으로 바로 보지 못해서 일어나는 번뇌 망상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걸 알았고, 순간순간의 경계에서 깨어있는 눈으로 바로 바라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正見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건만, 중생이 바로 보지 못하는데서 부처의 길과 멀어져서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번뇌 망상이 중생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힘들고 나태하게 때로는 무기력하게 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견을 지니는 것이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함을 능엄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본디 자리는 청정하고 본연하여 밝음이 구족된 상태이거늘, 그 본디 자리를 애써 밝히고자 하는 잘못된 한 생각이 바로 이 세계를 만들고 중생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견해가 다르면 증오를 이루고 생각이 같으면 사랑을 이루어 그 사랑이 흘러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 태(胎)가 되어서, 서로 어울려 염심을 발생하여 동업을 흡인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연으로 태란습화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생각과 사랑이 함께 맺어져 애욕이 되고, 이 애욕은 부모와 자식을 만드는 끈이 되며, 이러한 끈은 다시 윤회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정견은 “바로 본다” 또는 “바른 견해”라고 하고, 바로 본다는 것은 대상 하나하나에 대해서, 낱낱이 해체하여, 지・수・화・풍의 인연이 잠시 화합한 것으로, 볼 줄 안다는 것이며, “고・집・멸・도” 사성제를 닦을 때, 법을 잘 결택하여 관찰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즉 생각할 바와 생각하지 않아야 할 바를 잘 분간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특히, 영혼은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상견과 반대로 모든 것은 죽음으로서 끝난다고 생각하는 단견에 대한 망견을 버림으로써 욕망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상견은 욕애와 타인에 대한 미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단견은 허무주의에 빠져 모든 윤리를 부정하는 욕망의 먹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스님들은 지금 어떤 견해로 살아가십니까?

상견과 단견에 치우쳐 있는 우리들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또 다른 극단이다. 이 양극단을 버리고 여래는 중도를 가르친다.”

유달리 남의 이목을 중시했던 제가 늘 바깥으로만 치닫는 마음 때문에 내적 갈들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6식의 작용으로 인한 분별망상을 버리고 부처님처럼 중도를 행하자”는 저만의 지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치중치 않고, 나역시 남들이 어떻다라는 분별의식을 일으키지 않고, 정견에 대한 나의 생활신념을 정립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내면을 보는 나 자신과, 외면을 향하는 나 자신이 6근의 대상작용을 거쳐서 인식 되어질 때도, 항상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움직임 하나 하나, 생각 하나 하나가 수행아닌 것이 없습니다.

본다는 것은 듣는다는 것이고, 듣는 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이고, 느낀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 안다는 것은 곧 바로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보는 이것이야말로, 깨달음을 향한 멋진 삶의 항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라”

이 화두는 항상 저의 항로를 비추어주는 등대가 될 것이고 출가 수행자에게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사바세계의 상대적인 주관과 객관의 3차원 세계를 벗어나서 육안의 분별의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바로 보는 부처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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