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대중 가운데서 참 나를 찾아갑니다 - 선명스님

가람지기 | 2007.04.26 11:22 | 조회 3153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선명입니다.


먼저 한 편의 중국 고사 장왕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 초나라의 장왕은 궁궐에서 큰 잔치를 열어 신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불이 꺼졌고 방안은 암흑 속에 휩싸였습니다. 그러자 신하 중에 누군가가 장왕의 왕비에게 다가가 살짝 입을 맞추었고 깜짝 놀란 왕비는 엉겁결에 신하의 갓끈을 잡아떼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말합니다. “방금 어느 신하가 자기에게 무례한 짓을 하였고, 그래서 그 신하의 갓끈을 잡아떼었으니, 조금 후 불이 켜지면 그를 찾아 처벌해 달라”고 말입니다.

왕비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장왕은 호령합니다. 만약 불이 켜진 다음 갓끈이 온전한 사람이 있으면 큰 벌을 내릴 것이니 불을 켜기 전에, 모든 신하들에게 즉시 갓끈을 떼어 버리라고 합니다. 그 자리에 있던 신하들은 모두 갓끈을 떼기 시작하였고, 얼마 후 불이 켜졌을 때 왕비에게 무례를 범한 신하는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진나라와 전쟁을 시작한 초나라는 계속되는 패배로 함락 직전의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한 장수가 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진나라 군사들을 향해 거센 반격을 시작하더니 마침내 적군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장왕은 위험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자신을 구해준 장군에게 고맙다고 하니, 장군이 말합니다.

“아닙니다, 전하. 이 모두가 전하의 인품이 높으신 때문입니다. 전하께서는 2년 전 잔칫날 밤의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잔칫날 무례를 범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 때 전하의 너그러운 인품에 감동한 신은 그 후로 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그래서 산 속에서 숨어 군사를 길러 오다가 전하께서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대중스님 어떻습니까?

저에게는 장왕의 사려 깊은 마음과 남의 허물을 덮어 주었던 지혜로운 처세가 정말 감동스럽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강원에 와서 그동안 대중스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마음가짐은 어떠했는지, 특히 도반스님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과 언행들은 어떠했고, 또 나 자신을 닦아 나가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치문 1년 참 바쁘고 많은 일을 했지만 별로 드러나지도 않으면서 힘들다고 생각했고, 대중소임을 살면서 나태하고 싫은 마음 냈었거나 상대를 배려하고 마음 쓰는 것을 때로는 건성으로 하며 때로는 대중의 일보다 나의 일을 먼저로 생각하며 어리석게도 나의 허물을 바로 보지 못하고 상대의 잘잘못과 허물을 들추어 이야깃거리로 삼으며 시간을 허비하고, 나에게 하는 충고의 말에는 “저나 잘하지”하며 무시해 버리고, 나를 부추기며 칭찬하는 말에는 귀가 솔깃해져 좋아라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로 시시비비를 일삼고 생각 없이 무심코 한 말들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하며 지내왔던 것들이 적잖이 부끄러워집니다.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지었던 것이 청정해야 하는데 너무 생각 없이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차분히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그저 감정에 끌려 들뜨거나 가라앉아 있으면서 수행에는 게을리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지금 저를 부끄럽게 만들고 또 후회가 되지만 이것을 디딤돌로 삼아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고 닦아나가는 바탕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번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대중과 함께 살아가는 법, 어떤 것이 대중을 위하고 또 자신을 위하는 일인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소중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말과 행동을 신중하고 조심히 하며, 상대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마음들을 내가 먼저 내는 것, 또 자신이 비록 좀 빼어나다해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고,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마음과 힘을 모아 생활하면 즐겁고 덜 힘들지만, 그렇지 못하면 대중 모두가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스님들을 거울삼아 자신의 고칠 점과 본받을 점 등을 배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예불 시간 전에 조용히 앉아 잠시 마음도 챙겨보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하고 발원해 봅니다.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수행자가 되며. 어떠한 경우를 당해서도 마음을 잃지 않게 잘 다스리고, 밝지만 가볍지 않고, 느리지만 진중하게 생활하는 수행자가 되자.”고 말입니다.


행자시절 열심히 읊조렸던 자경문의 한 구절을 다시 되새겨 보며 마칠까 합니다.


“듣기 좋은 소리, 듣기 싫은 소리 그 어느 것을 들을 지라도 마음의 동요가 없어야 하느니라. 덕이 없으면서 남의 칭찬을 듣는다면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고, 허물이 있어 야단을 듣는다면 참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다. 기뻐하면 잘못된 점을 찾아 반드시 고칠 수 있게 되고 부끄러워하면 도를 더욱 부지런히 닦고자 할 것이니라.”


대중스님 여러분!

나른한 봄날, 건강 유의하시어 항상 상쾌하고 행복한 날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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