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무엇이든 마음을 내어서 하자 - 성욱스님

가람지기 | 2007.04.26 13:10 | 조회 3174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성욱입니다.


저는 오늘 예전에 제가 알던 노스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로 차례법문을 시작할까 합니다.


옛날 어느 산골에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고부간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어머님 오늘은 무엇을 할까요?”라고 묻고, 시어머니는 “오늘은 밭을 매자꾸나.”라고 하며 밭으로 나가 일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며느리가 여느 날처럼 “어머님 오늘은 무엇을 할까요?” 라고 물었는데, 그날따라 시어머니는 귀찮다는 듯이 “시집 온 지도 오래 되었는데 이제부터는 니가 알아서 제일 급한 일부터 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해가 넘어가도록 며느리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화가 난 시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밭으로 나오지 않았는가 하고 방문을 살짝 열어 보았습니다. 며느리는 방 가운데 좌복을 놓고 앉아서 염주를 돌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외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괘씸한 마음에 “늙은 시어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을 매고 있는데, 젊디 젊은 것이 방에 앉아 한가롭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어머님께서 제일 급한 일부터 하라고 하셔서요. 제게 제일 급한 일은 나무아미타불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염불해서 극락정토에 가는 것입니다.”


이 말에 시어머니는 문득 느끼는 바가 있어서 방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내가 먼저 갈 것이 아닌가. 나무아미타불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염불을 해서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면 내가 먼저 가야 하지 않겠는가?’

나무아미타불의 ‘나’도 모르던 시어머니는 그날로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한 것처럼 좌복을 놓고 염주를 들고 앉아서‘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며느리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해야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시어머니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결국 나무아미타불은 오간데 없어지고‘천 타불 만 타불’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며느리가 일어나니 온 집안에 아름다운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이상한 마음에 시어머니 방에 문을 열어보니 하얀 연기가 가득한데 시어머니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때, 허공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 위를 바라보았더니, 시어머니가 불보살님들에게 둘러싸인 채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어머니 되는 보살님은 일념으로 천 타불 만 타불을 염하여 산 채로 극락세계에 갔다고 합니다.


이제 제가 몇 해 전 경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아주 조금 병약한 관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좀 쉬어볼까 하고 어느 절을 찾아갔습니다. 때마침 그 절에서는 불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비구니 스님 두 분이 계셨는데, 사람도 쓰지 않고 공양만 마치면 부수고 짓고,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쉬어가겠다는 제 처음 생각과는 달리, 불사를 돕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늘 한가롭게만 보이던 부처님 계신 곳이 이렇게나 눈 코 뜰 새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또한 부드럽고 자비스럽게만 보이던 스님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강인함과 절대로, 한 번에 O.K 하는 일 없이 두 번은 기본이고 세 번, 네 번에 걸쳐 1cm, 1mm도 허용치 않고 빈틈없이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시는 것을 보고 내심 기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한 고집 하는 성격 탓에 힘들다는 핑계로 도중하차 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스님들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내어서 해야 한다. 세속에서 30년을 사는 것보다 부처님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3일 사는 것이 낫다. 지금 힘들게 지어 놓은 복으로 평생을 산다.” 등등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뜻을 조금 알 것도 같지만, 그때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헤아리기 힘든, 속 깊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불사는 이어졌고. 전에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라 힘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눈만 뜨면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제가 무르고자 했던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사는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에 가더라도 불사는 마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피로가 누적되면서 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곳에 서서히 신호가 왔습니다. 그러나 차마 병원에 가야겠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또 병원을 가려 해도 교통도 불편하고. 그런 일로 스님들을 귀찮게 하기 싫은 마음이 더 커서 꾹 참다가 결국 실신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밤이 오고,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정신없이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마을에 용한 한의사가 왔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속가 모친이 편찮으시다는 생각도 났습니다. 모친의 약을 구해 보겠다고 만사를 제치고 마을로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한의사를 만나자 마자 모친의 병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현재 제가 아픈 이야기만을 한숨에 털어놓았습니다. 의사는 묵묵히 이야기를 듣더니 제 손을 내 놓으라고 하더니 모두 다섯 곳에 침을 놓아주었습니다. 절을 넙죽 하고 일어났는데,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고 보니 몸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오랫동안 괴롭히던 증세가 없어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부처님 앞에 달려가 삼배를 드린 후, 더욱 마음을 내어서 불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인연으로 지금 이렇게 저의 은사스님을 만나 운문사에까지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해태심이 나거나 퇴굴심이 일어나면 그때의 일들을 생각하며 자심을 반성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저는 지금 사집반이 되어 대혜스님의 서장을 배우고 있습니다.

대혜스님께서 증시랑에게 답한 편지 가운데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공경히 받들어 섬기고,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한 티끌의 의심도 없이 일념 진실한 마음으로 구도하여 불망념지장엄해탈을 얻었다는 내용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이 좋은 계절에 그야말로 화장장엄 한 운문사 한 가운데서. 지극한 마음을 내어 천 타불 만타불의 염불세계는 물론이요, 선재동자와 같이 일념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 속으로 빠져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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