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되자 - 성견스님

가람지기 | 2007.07.07 16:21 | 조회 3150


저 행자때 노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우주를 다 덮고 남는 복이 있어야 중노릇 할 수 있지 아무나 못한다.’는 말씀이 지금에야 실감이 납니다. 많은 대중스님들을 모시고 이 자리에 앉아 보니 제가 전에 쌓은 복이 조금은 있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성견입니다.

저는 사실 출가 전 절집과의 인연은 수학여행때 불국사 다보탑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은 기억과 은사스님 절에 속가 보살님의 강요로 초파일 점심공양 하러 억지로 간 기억 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예전에 저를 알았던 분들이 제가 출가한 걸 알면 의외라고 할 겁니다. 다들 씩씩한 군인이나 경찰이 된 줄 알고 있을 겁니다.

그야말로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출가하여 지금까지 아무 장애없이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노스님과 은사스님을 비롯해 속가 보살님의 기도의 공덕인 것 같습니다.


26살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저의 속가 보살님이 저에게 조심스럽게 묻더군요. “비구니 스님들의 청정하게 수행하는 모습이 너무 좋더라. 너는 부지런하고 잠도 없고, 결혼할 생각도 없으면 출가해서 스님이 되는 건 어때?”

저는 보살님을 한번 쳐다보고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죠. “보살님이나 열심히 다니세요. 저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제 머리 속에서는 ‘출가’라는 말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해 진 것은 스님과 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저도 모르게 경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생각은 아니라고 하면서, 마음은 부처님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해 겨울 저는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출가의사를 밝히니 저희 집은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다들 좋아하더군요. 저의 작은 아버지께서는 조계종인지 꼭 확인하고 가라하시고, 도리어 작은 어머니가 우시더군요.

저희 집이 딸은 저하나인데 처사님께서는 섭섭하지도 않으신지 열심히 수행하라고 잘 선택했노라며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저의 집 식구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저는 정말 아무 걸림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출가 했습니다.

저는 삼보가 뭔지 칠정례가 뭔지 절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은사스님과의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한달 두달 절집 생활을 하는 저에게 여러 가지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힘들다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나는 잘하는데 주위에서 나를 힘듥 한다는 분별된 마음...., 점점 마음은 나가고 싶다는 마음쪽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더니 행자생활 6개월 만에 결국 저는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하루도 절에 있기가 싫었습니다.

어느날 은사스님은 출타하시고 저는 조용히 한쪽에 짐을 싸놓고 은사스님을 기다렸습니다. 은사스님이 돌아오신 후 저는 스님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스님! 이길은 제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처음에는 놀라셨다가 나중에는 저를 달래도 보고 걱정도 해 보시더니, 제가 초지일관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니 결국에는 포기를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를 보시고 부모님께서는 아무 말도 안하셨습니다. 보살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저를 꼭 안아 주시면서, 걱정말라고 그럴수도 있다면서 웃어 주셨습니다. 저도 그때 마음도 아프고 힘든 시기였지만, 겉으로 태연하셨던 부모님께서도 그 때가 많이 힘드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절집을 나오면 무언가 나의 길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지금은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렸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 기죽지 않고 운동도 다니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도 공부하며 씩씩하게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하는 일마다 재미도 없고 6개월을 못 넘겼습니다. 저는 이것 저것 2년을 방황하며 때론 ‘나는 왜 이럴까?,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절에서 나올 때 작은형님께서 주었던 편지한장을 우연히 보게된 것이 제가 재발심 하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환경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 바꿀 수 있는 방법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내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는 남이 아닌 나를 바꿈으로 날마다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제 삶은 또다시 달려졌습니다.

부모님께 재출가의 의사를 말씀드리고, 은사스님께도 찾아가 참회를 하고 사숙님과 함께 참회기도를 시작하고 다시 행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의 행자생활은 은사스님이 계시는 절이 아닌 노스님께서 머무르고 계신 절이었습니다. 노스님께서는 제가 꼭 돌아올거라 하시며, 그때는 당신 절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답니다. 그렇게 계를 받고 은사스님과 1년을 함께 살다가 공부를 안해서 입학시험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은사스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운문사에 와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제가 마음에 주인이 된 이후에는 저에게 공부 빼고는 어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 힘든 모든 경계는 내가 만든것이지 남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은 내 것입니다. 망상의 노예가 되지말고 주인이 되십시오.


대중스님!

지금 더우시죠?

더위가 주인이 되어 휘둘리지 말고, 어떤 경계에서도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는 수행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