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 죽음-진성스님

가람지기 | 2007.07.18 12:07 | 조회 2935

새로운 삶의 시작, 죽음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달렸느냐?”

“며칠 사이에 달렸습니다.”

“너는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다른 사문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달렸느냐?”

“한 끼의 밥을 먹는 동안에 달렸습니다.”

“너는 도를 모르는구나.”

또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달렸느냐”?

“한 호흡 간에 달렸습니다.”

“그렇다! 네가 바로 도를 아는구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줄다리기하고 있는 대교반 진성입니다.


대중스님. 오늘 갑자가 내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웃으면서 떠나실 수 있으십니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달려가고 있는데. 죽음을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생사일여란 말이 있듯이 사는 것과 죽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죽음은 삶과 둘이 아니므로,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삶을 바르게 살지 못하게 됩니다. 즉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증일아함경』에는 “저러한 중생들이 윤회하여 받은 몸에 온기가 없고, 덧없이 변하여 오온이 나누어져 오음의 몸을 버리고 목숨과 기관이 끊어지고 파괴되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곧 죽음이란 오온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거짓 된 나’가 인연이 다해서 호흡이 정지되고 체온이 상실되어 의식이 없게 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제한된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보냄으로써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죽을 준비가 아니라 삶의 준비인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well-dying은 삶을 진솔하고 슬기롭게 꾸리고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하고자하는 고민이 담겨 있는 운동으로 불교의 생사일여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서나 사전 의료 지시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장례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장기기증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주위에 밝은 웃음을 전파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well-dying의 한 방법입니다. 저는 살아 있는 장례식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죽어서 추모를 하는 것보다 가까운 사람들과 그동안 서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좋은 죽음 준비는 ‘죽음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스님, 지금 눈을 감고 어두운 방을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벽에는 티베트인들의 조장 풍경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사진이 보이십니까? 방안으로 더 들어가면 나무 관이 하나 보입니다. 관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눕습니다. 이제 하얀 천을 얼굴에 덮습니다. 자, 이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껴보십시오.


지금 나는 괴롭게 죽고 있습니까?

미소 지으며 죽고 있습니까?

이제 육신의 호흡과 심장은 멈추었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멀리 빛의 존재가 묻습니다.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어떠한 인간이었습니까?

마지막으로 관해 보십시오. ‘나는 누구입니까?’


죽음을 사유하게 되면 ‘이 순간’ 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호스피스 운동에 평생을 바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인생수업’이라 했습니다. 이수업을 통해 사랑과 행복의 단순한 진리를 놓고 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대중스님, 삶이 버겁고 힘들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죽음명상을 해 보시길 권유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르고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며, 남은 삶이 한층 귀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또한 한 개 한 개의 돌메이로 정성스럽게 돌탑을 쌓듯이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을 정성스럽게 살아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어느 달이 좋은 달이며, 어느 날이 좋은 날이겠습니까?

나의 마음이 극락에 있을 때, 내가 있는 이곳도 극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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