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혹시 문수보살을 놓치고 계시진 않나요? - 지상스님

가람지기 | 2007.07.24 13:40 | 조회 3157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지상입니다.

오늘도 저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쫓아 한 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고 울긋불긋한 현상에 매여 너무나도 얄팍한 삶을 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시자소임을 사는 어느 날 이었습니다.

허름한 옷과 꾸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종무소를 찾은 할머니 한분,

그분을 보고 저는 생각합니다. 뭘 얻으러 오셨나? 하면서 제 맘은 할머니의 허름한 형상에 잡혀서 말은 친절했으나 속마음은 ‘아니 어떻게 사셨길래 이 연세에 뭘 얻으러 오시나... 쯧쯧..’

그러나 할머니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사집반스님 부터는 알 것입니다.

할머니는 운문사에 공양을 하고 싶어 온 것 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백만원을 만들어 공양하고 싶은데 아무리 모아도 50만원을 넘어가지 않아서 이러다간 백만원 모으다가 죽겠다싶어 50만원이라도 들고 왔다는 겁니다. 할머니는 하루하루 행상을 해서 모은 돈으로 대중스님들에게 볼펜과 때타올을 공양하였습니다. 이 공양물을 과연 내가 받을 만한 덕이 있을까 싶어서 무서워서 못쓰다가 이제서야 볼펜은 능엄경을 사경하는데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극한 정성을 들고 오신 할머니께 제가 지은 意業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스치는 것은 제 출가 때의 일이었습니다.

출가하기 위해 경상도를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속가집에서 먼 곳을 찾다보니 경상도 절을 찾게 되었고 아는 지식이 없어서 다니던 절의 노스님과 함께 비구니스님 절로서는 크다는 곳에 갔습니다.

같이 간 비구스님은 노스님이신데 법랍은 50년 정도이시고 겉모습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시는 스님이시라 항상 편안한 스님이었습니다.

그날도 노스님은 승복위에 털 잠바를 입고 그 절에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저는 항상 스님께서 편안하고 걸림 없이 사시는 모습을 봐 와서 그런지 스님의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겨울이어서 도량은 매우 썰렁했습니다. 종무소 앞에서 스님을 찾으니 젊은 비구니스님이 얼굴만 내밀며 스님과 저를 맞았습니다. 비구니스님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미닫이 문을 조금 열고 “어떻게 오셨어요?” 하면서 위아래로 스님과 저를 훑어보았고, 출가하려고 왔다고 했더니 또 한번 훝어 보더니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노스님과 제가 들어간 곳은 마루바닥 이었습니다. 그때는 한겨울이라서 제일 추운 때 였습니다. 그러나 비구니 스님은 혼자 방석을 깔고 노스님과 저는 찬마루바닥에 앉기가 못해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방석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시작 하는데 노스님께서는 그에 아랑곳없이 웃으시면서 대화를 하셧습니다.

비구니스님은“어떻게 전라도에서 여기까지 왔죠? 전라도도 절 많찮아요?”

노스님께서는“그래도 속가집에서 멀어야 좋을 것 같아 데리고 왔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잖아요. 이제 초심인데..”

비구니스님“마음만 있으면 되죠 뭐” 하시더군요.

이에 노스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스님은 마음으로 밥도 먹나요? 그러면 배부르지요?”하시는 것입니다.

젊은 비구니 스님은 그때까지도 말이나 대하는 태도에서 노스님의 허름한 옷차림을 보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그 말씀에 주먹으로 한 대 맞은 양 깜짝 놀라더니 그때부터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도 그 젊은 비구니스님이 얼마나 스님과 저를 무시하는지 느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노스님께서 그 절을 내려오시면서 하신 말씀은 “너도 그들의 삶에 들어가면 저 모습이 될 수 있다. 잊어버리지 말아라!”였습니다. 저는 저렇게 살지 않으리라 깊게 다짐하면서 저는 다른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아무래도 출가를 결심하고 맞이하는 충고인지라 삶의 모습이 될 수있는 이것을 마지막 가는 날까지도 화두처럼 가지고 가리라 했는데 어느새 세월에 닳듯이 잊혀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노스님께서 운문사에 잠깐 들르셨는데 여전히 옷차림은 제가 출가하기 전의 스님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은 적삼차림에 까만 고무신 까만 양말 무엇보다도 손에 들고 땀닦는 그 큰수건! 스님의 모습은 그야말로 밭에서 일하다 오신 모습 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전의 제가 아니었습니다. 스님을 본 순간 “아니 동방아라도 입고오시지.. 아니 그 수건은 뭐지?” 스님께 수건은 좀 넣으시라고 했더니 “땀닦기에 이게 얼마나 좋은데.. 허~참”그러십니다. 노스님은 가시면서 한마디 하십니다.

“지상스님~ 대중 속에 살면서 대중에 섞이되, 지혜로와야 해. 지혜로운 수행자란 보는 견해가 발라야 하고.. 먼저 자기 자신을 잘 볼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여. ”하시며 제게 지극히 합장하시며 “성불합시다” 하시고 돌아서서 가시는 스님을 보고 저는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50년 법랍에도 사미니인 저에게 지극히 합장하시며 가시는 스님의 참모습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잊어버리지 말자, 나는 저렇게 살지 않으리라는 다짐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저도 그 젊은 비구니스님의 모습으로 할머니를 대하고 노스님을 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육근경계에 끄달리지 말고 하심 하라는 그 첫 경계의 말을 잊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제 육근경계를 귀하게 여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삭발하기전에는 노스님의 그 어떤 모습도 형상에 사로잡혀서 분별을 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삭발후의 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눈에 보기 좋고, 듣는 말이 좋고 맛있는 것이 좋은... 그렇습니다. 저는 그동안 살아온 경험과 익혀온 지식에 의해서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코로 향기를 맡는 것, 혀로 맛보는 것 등등 육진 경계에 머물러 판단을 하고 견해를 가졌던 것입니다.

다 저의 육근도적이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고 僧은 이래야 한다는 습의 속에서 그것이 다인냥 그렇게 조금씩 울타리를 쳐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울타리 속의 것들이 최고인줄 생활해왔고 틀릴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僧의 길에 좀 더 잘 가라고 알려주는 안내판에 불가했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가는 가는 제가 가야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큰 착각 속에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그 속이 최곤줄 살고 있었던 것이 지금의 제 살림살이였습니다. 이제는 그 울타리를 치워야 할 것 같습니다.

노스님과 할머니께 참으로 부끄럽고도 감사할 뿐입니다.


대중스님!

마지막으로 대중스님들께서도 잘 아시는 자장율사에 관한 일화로 마무리 하려 합니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 친견을 위해 기다렸는데 문수보살이 늙은 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장스님을 찾았으나 자장스님은 문수보살을 알아 보지 못하는 큰 실수를 저지릅니다. 만약 늙은걸인의 모습이 아닌 신선 같은 모습이었다면 그때도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놓쳤을까요? 대중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색성향미촉법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한정짓지 않으면 툭 트인 부처님 살림살이 같은 광대무변의 삶을 살고 무량복덕을 얻게 될 것입니다.

혹시 대중스님들도 육근경계에 끄달려서 문수보살을 놓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육근도적을 잘 다스려서 문수보살도 때려눕히는 무착보살이 되어보십시오.

항상 조고각하하는 수행자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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