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선지식 - 청현스님

가람지기 | 2007.07.24 13:52 | 조회 3460

“참된 선지식은 사람 가운데서 최대의 인연이 된다.

능히 중생을 교화하여 불성을 득견케 한다.”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청현입니다.

선가귀감을 볼 때였습니다. 수도자가 일상 생활가운데 늘 점검해야 할 도리 중에 ‘生來에 値遇佛祖麽아’ 부처와 조사 즉 선지식을 만나고서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는가? 하는 이 부분에서 저는 웬지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그야말로 천지를 모를 때 상노스님의 꼬임에 넘어가 삭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상노스님께서는 “야야~ 중팔자가 상팔자여. 니 가고자픈 데로 어데든 댕길 수 있고, 큰스님도 많이 뵐 수있는데 ..안 깍을래? 돈도 많이 생긴다. 고마 깎자.”고 하시며 강력하게 권유하셨습니다. 그다지 나쁜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돈도 많이 생긴다는 말씀에 껌뻑 넘어가 바로 순순히 머리를 대어 드렸습니다.

그 날부터 1년 동안 명색이 시자 아닌 시자로써 목에는 약간의 기브스를 하고 아주 당당하게 상노스님의 빡빡한 스케줄에 따라 어딜 가시든 늘 그림자처럼 모시며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큰 절이 없을 정도로 많이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큰절에 가게 되면 자연히 동자승이라며 주위에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대웅전 참배 후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너른 장소 어느 곳에서든 상노스님의 눈 짓 한 번에 그동안 새벽잠 못자고 갈고 닦은 실력을 한껏 발휘해 천수경·약찬게 등을 외우고 변함없는 네 박자 박수를 치며 3·3·5언으로 된 찬가를 부르고 나면 돈이 척척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주머니는 무겁고 마음은 가벼우며 입가에 미소가 번질 즈음 노스님을 따라 큰스님을 만나 뵈러 갑니다. 그렇게 뵙기 힘들다던 큰스님들도 상노스님 빽 으로 어떤 관문이나 절차 없이 쉽게 뵐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조금이라도 많이 이근에 심어주시려고 좋은 말씀을 해 주시곤 하셨지만 철부지에 천방지축인 저는 귀에 넣으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먹을 것만 주면 좋다고 먹고 놀다가 오곤 했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 문득 생각난 것은 진발하여 다시 이 길에 들어서서 조사스님의 말씀과 경전을 통해 선지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간절하게 느끼면서 철부시적 선지시식을 그냥 지나친 아쉬운 마음이 더욱 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교학이건 선이건 길을 다르나 깨달음아른 궁극적 목표를 향해 외로이 고군분투해야하는 우리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선지식은 길 없는 길에서의 안내자와 같고 캄캄한 밤에 등불과 같으며 강을 건널 수 있는 뗏목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문수보살은 선재에게“선지식을 친근하고 공양함은 온갖 지혜를 구족하는 첫째 인연이다. 그러므로 이 일에는 고달픈 생각을 내지 말라”고 일러 주십니다. 그러면 선지식은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을까요?

먼저 깊은 믿음과 존경심이 있어야 합니다. 선지식을 믿는 그 정도에 따라 자신의 공부가 성취된다고 만공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믿음은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의 간절한 구도심이 있어야 합니다. 한 구절의 법을 구하기 위해 몸을 산채로 나찰귀신에게 던져 주었던 설산동자와 같이 간절한 구법이 선지식을 만나게 합니다. 따라서 내가 몸소 보리심을 발해 찾아 나설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식을 만났을 때 어떠한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배워야 할까요? 입법계품중 문수보살이 선재에게 선지식을 만났을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 선지식을 뵙더라도 만족한 마음을 내지 말라. 둘째, 가르치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가. 셋째, 교묘한 방편에 허물을 보지 말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중생의 습으로 혹 개개인의 잣대로 함부로 선지식을 재단하여 의심하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재동자는 구법 여행에서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53선지식을 찾아다닙니다. 별의별 스승들을 다 만나지만 한 번도 의심하거나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않으므로 53선지식은 신분과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선재동자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이렇듯 분별하지 않고 선지식의 가르침을 믿고 진실로 배우고자 하는 자세. 그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르고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과. 늘 뵙고는 그냥 지나쳐 버리거나 혹 나의 고정관념으로 학식. 명성 등 겉으로 보이는 외형들로 선지식을 분별하는 저의 어리석음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졸업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이 시점에서 돌이켜 보건데 강원4년이란 시간은 나를 경책해주고 공부시켜주며 사람을 만들어 주는 가장 큰 선지식은 항상 곁에 있던 대중스님과 도반스님들이었음을 알게 해주었고, 선지식은 나의 마음먹기에 따라 가장 가까이에 있을 수도 악지식도 선지식이 될 수 있음을 깨우쳐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대중스님!!

더 큰 공부를 위해 우리들 자신의 안일하고 나태함을 반성하고 간절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 선지식 만나기를 발원해서 깨달음의 길에서 다 같이 만나지 않으시겠습니까.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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