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간절한 마음 - 지한스님

가람지기 | 2007.09.23 15:24 | 조회 3126

오늘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자리의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지한입니다.

저는 오늘 차례법문을 맞아서 ‘생명의 선지식’이야기를 해 드릴까 합니다. 여름철이 시작될 무렵, 어디선가 날아든 제비들이 청풍료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새끼제비 한 마리가 마루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죽지 않은 그 새끼제비는 밭에서 잡아온 배추벌레를 잘 먹었습니다. 그 새끼제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얼마간 지나자 새끼제비는 3마리로 늘어났습니다.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밭에 가서 벌레를 잡으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떤 날은 알타리 무를 다 뽑아 버려서 벌레를 잡기가 힘들어질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양배추 밭이나 호박밭에서 생각지 못한 큰 벌레를 잡는 날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벌레를 잡아 준다고 해도, 아픈 제비는 튼튼하게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부처님, 새끼제비를 살려보겠다는 제 욕심으로 그들엑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 욕심으로 새끼제비들이 괴로움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만약에 죽어야 하는 제비들이라면 빨리 극락세계로 보내 주십시오.”

어느 날은 호박밭에서 벌레를 잡고 있는데 많은 비가 내리기에 비를 맞으면서 논밭을 흝어보고 있는데 반스님들이 땀을 흘리면서 밭일을 가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벌레를 잡겠다고 농사일을 망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땅 파던 것을 중단하고 다시 깨끗하게 정리하는 도중에 큰 지렁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잡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제비들이 먹기 좋게 손으로 자르고 있는데 피가 보였습니다. 그때는 먹이로만 생각했지 생명이 있는 존재라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랐고, 염주알처럼 눈물이 쏟아지며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세상의 많은 부모님들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숲으로 보낸다면 굶어 죽을 것이 뻔한 새끼제비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져 대방(청풍료)으로 돌아왔지만 제 주위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고, 어둠과 괴로움이 밀려오는 것 같아서 반 스님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채경당 지하로 가서 비처럼 쏟아지는 눈물과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주먹으로 쳐도 터지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눈물을 닦고 잠을 청하는데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습니다.


다음날 새벽 화대(보일러를 조절하는 소임)를 도는데 하늘이 너무나도 청명하였습니다. 별들이 초롱초롱 반짝이면서 온 도량과 우주법계가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 어떻게 이렇게 청정할 수가 있을까?

어제만 해도 어둡고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자책하며 고통스러워했었는데..., 모든 일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중생 모두가 청정함을 갖추고 있는데 모양과 번뇌가 많다보니 청정함을 보지 못하고, 어느새 다른 마음이 찾아와서 스스로 괴로워 한다는 것을 앍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청정함과 불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곧 참다운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제비에 대한 마음은 시원한 가을바람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침 발우공양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새끼제비들을 숲속으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침밥은 먹이고 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밭에 가기 전, 새끼제비들을 키우던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들은 저보다도 먼저 제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세끼제비 3마리가 편안하게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가 힘없이 날개짓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새끼제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비야, 미련을 버리고 극락으로 가거라. 여기는 껍데기만 있을 뿐이다. 다 무상하고 덧없는 삶이다.”라고. 왜 이렇게 죽지 못하고 있냐고 중얼거리며 몸을 들여다보는데, 문득 사람이 죽을 때 뱃속에 있던 것을 다 내놓고 죽는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배를 눌러줬습니다.

배설물을 모두 내 놓는 순간, 편안하게 새끼제비는 극락으로 갔습니다. 더러움과 깨끗함, 청정함과 청정하지 않은 것, 괴로움과 즐거움 등 모든 것이 마음에서 일어나고, 마음에서 사라지고, 마음이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참다운 마음에는 빨강물을 들이려고 해도 들일 수 없고, 다른 것을 채워 넣으려 해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왔다가 인연을 따라 사라집니다. 껍데기로 살다가 껍데기는 흙속으로 묻히고, 시간이 지나면 그 마저 사라집니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역사가 남는다 해도, 그 역시 세월 따라서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무상함을 잘 알기에 욕심을 버려야만 청정한 마음이 온 누리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하나였으나 번뇌에 가려져서 참다운 나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번뇌 망상이 있기에 보리를 이루는 것이고, 고통을 맛보지 못하면 중생들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이 껍데기가 있기 때문에 수행정진하고 마음을 닦아서 성불 할 수 있는 것이고, 성불 했을 때 온 누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불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하신 것도 여기서 나온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깨침은 멀리 있는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무상, 고, 무아를 알아가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태풍과 파도가 몰아쳐도 구멍이 나지 않는 바위처럼,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는 산처럼, 이곳을 시작으로, 험한 길을 걸어도 퇴굴하지 않으려 합니다. 졸업 후에도 바깥 경계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제 마음을 무쇠처럼 달구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대장부로서 성불의 길을 향해 갈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아래위가 없는 계단을 걷고 있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하여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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