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커피와 지장보살님 (유정스님)

운문사 | 2006.04.11 11:05 | 조회 3120

작열하는 한낮의 무더위 한 여름의 더위를 방불케 합니다. 피죤의 향기가 무색할정도의 땀 냄새도 손톱사이에 낀 흙까지도 가히 싫지 않은 사집.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유정입니다.

경상 밑에서 올라오는 발 냄새가 코를 자극해도 모두들 무심합니다. 첫 철에는 지장전 부전소임으로 사집에 본분사를 본의 아니게 망각하고 지냈는데, 지금은 시간만 되면 누가 밭에 나가라고 등 떠밀지 않아도 저절로 밭을 향하는 것이 사집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차례법문 때문에 전전긍긍하기를 오래. 깊이 고민하면 아득해진다고 했던가요? 차례법문 때문에 고민하자 은사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려운 법문하려고도 말고, 자기분상에서 과분한 법문도 욕심이니 경험담을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문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내용이지만 저의 경험을 들어 법문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대중스님들께서도 출가했을 때는 결정한 뜻이 있어 출가하셨겠지만 저 또한 가슴 저리도록 무작정 좋은 부처님 때문에 출가를 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 공부에 절절히 한이 맺혔는지도 모르죠. 고인의 게송에 보면 "올 때는 힌구름과 더불어 오고 갈 때는 밝은 달을 따라 가더라. 거래하는 이 한 주인이 필경 어느 곳에 있는고. 역대조사께서 보증하셨는데 왜 목숨 바쳐 실천하지 못하는가!" 저는 역대 조사께서 보증하신 그 길에 한 목숨 바치기로 맹세하고 다 버리고 출가했는데 끈질긴 집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전 출가 전부터 커피를 좋아해서 즐겨마셨는데 그땐 단순히 분위기에 젖어 마시고 좀 지나서는 마시면 단박에 반짝 기운이 나니까 마셨는데 출가해서 끊지 못하고 마셨습니다. 정신없이 커피에 집착하는 행자를 보고 은사스님의 걱정 어린 말씀이 “출가 수행자가 되가지고 커피하나 못 끊고 탐착하느냐”고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둔한 고집이었지만 몸에 별 이상이 없었고, 보약이 필요없이 커피 한 잔이면 만 가지 피로가 다 풀리니 천하일미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집착이 집착을 더한다고 세월이 지나면서 커피 마시는 횟수가 늘어났고, 심장이 벌렁벌렁 거릴 때가 간혹 있었지만 신심 하나면 극복된다고 단정해 버리고 계속 마셨던 그 피와 같은 커피를 강원 들어와서 한 두 철 못 마시다가 규율이 완화되면서 자유롭게 마실 수 있었을 땐 전 완전히 살판났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죽을 판이였는데... 고질병이 되어버린 커피중독, 커피 때문에 탐, 진, 치가 깊어지고 희, 노, 애, 락이 벌어졌습니다. 점점 체력도 떨어지고 자재력을 잃어가는 저의 모습을 보고 반스님들이 충고도 해주고 겁도 주고 때론 빼앗기까지 하면서 많이들 걱정해준 것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커피 마시는 횟수를 줄이면서 기도를 해볼까 하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겨울방학을 앞두고 사집소임 뽑던 날 생각지도 않았던 지장전부전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급한 마음에 봄을 기다릴 것도 없이 오후 입선이 자유로운 치문 겨울방학을 기회로 시간만 나면 지장전을 향했습니다. 커피에 대한 탐욕과 마음을 다스리는 기도. 평수 넓은 이마가 마루에 부딪치도록 오롯이 절만했죠. 간절한 저의 기도는 깊어지고 경계가 바로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원래 제가 기도 시작하면서 하루에 한잔만 마시기로 결심했는데, 한심한 게 한잔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두세잔 양을 한꺼번에 마셔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커피를 마실 때마다 너무 어처구니없이 쏟아지는 커피 때문에 겉옷은 물론 속고의까지 빨기를 수차례 거듭하면서 아마도 지장보살님께서 저의 무지함을 경책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설마 아닐거야’라고 애써 위안하면서 계속 마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으로 지장보살님에 자비를 깨달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커피족들이 풍기는 은은한 커피향에 반사적으로 그 넓은 금당 지대방에서 제 딴엔 좋은 자리라고 옷장 구석에 붙어 앉아서 마셔볼까 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옷장 문이 벌컥 열리더니 상자 하나가 커피 컵 위에 직통으로 떨어졌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커피에 젖은 옷은 둘째 치고 민망해서 황급히 수습하고 정통을 향하면서, 커피를 쏟을 때마다 희미하게 느꼈던 대로 이런 경계들이 지장보살님의 자비라는 것을 그날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성현의 자비는 따뜻하면서도 때론 서릿발 같은 차가운 칼날 같으며, 모든 역경계는 발심의 밑거름이 되고 중생경계 그대로가 道라”하셨듯이 커피 때문에 벌어진 수많은 경계 속에서 비록 커피의 道는 통하지 못했어도 어느 순간도 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지장보살님의 서릿발 같은 자비에 가슴이 뜨거워 졌습니다.

이렇게 지장보살님의 자비를 마음으로 감득하면서도 지독한 묵은 습기 때문에 아직도 하루 한잔이라는 착을 끊지 못하고 아침마다 복잡한 종두통에서 몸 씨름을 하면서 커피의 목마름을 채웁니다. 이 한잔의 착도 다 끊고 차례법문을 하고 싶었는데 커피이야기가 너무 장황했지만 우리가 수행하는데 마냥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놓지 못한 옛 습을 버리는 것도 수행에 한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성현의 말씀에 "과거의 모든 묵은 습을 끊지 못하고 도를 이룬 도인은 없었고 본래 성불이란 것이 다른데서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하나 진실하면 도는 거기서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49년 설한 그 많은 법이 오직 우리들로 하여금 자기로 돌아가 쉬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달리 때를 기다리지 말고 이 당처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진정 마음으로 사는 우직한 수행자가 되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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