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행 선(묘성스님)

운문사 | 2006.04.10 11:14 | 조회 2879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묘성입니다.

저는 가끔 죽음의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저에게 후회하지 않는 순간이 되기 위해, 수행자로서 제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자문해 봅니다. 출가한 마당에 제 안에서 아직도 갈구되고 있는,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나 많은 지식의 축적도 죽음 앞에선 초라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매 순간 순간 한 생각 일념삼매로 어두운 미망迷妄을 누르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밝은 깨달음의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아가는 것만이 죽음 앞에서도 저를 당당한 수행자로 남아 있게 할 것입니다.


오늘 저는 걸으면서 하는 선禪, 행선行禪(또는 경행經行, 범어로 kayaghattasati)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흔히 선, 참선參禪이라고 하면 대부분 고요한 장소에 앉아서 하는 좌선수행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집중적으로 참선을 하는 장소인 선방에서도 스님들이 주로 장시간 앉아서 공부하고 계십니다. 좌선시의 반가부좌, 혹은 결가부좌 자세는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부터 고대인도 원주민들의 명상 자세였으며, 장시간 깊은 삼매에 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세입니다. 그러나 초보자가 처음부터 좌선 자세로만 공부를 하다 보면, 금방 다리가 아프고, 다른 자세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기가 쉽습니다.


나고 죽는 고통에도 한결같은 삼매를 얻기 위해서는 행주좌와行住座臥의 어떤 자세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것이 가장 기초적 단계입니다. 그리고 이 기초공부의 튼튼한 바탕은 行禪을 통해 닦여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선 시에는 좌선을 할 때보다 대상 즉 경계의 변화와 몸의 움직임으로 인해 삼매에 들기 어렵고 복잡하지만, 이러한 동적인 경계 속에서 삼매에 들려고 노력하다 보면, 주선住禪이나 와선臥禪 시는 물론이거니와 좌선 시에 더 깊은 삼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선으로 마음이 집중되어 일념집중이 이어지면 수면도 극복되어 힘차게 용맹정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도 수행자들에게 행선이 좌선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사에는 따로 경행당이 있었고, 아난존자는 행선으로 수다원과를 이루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매일 새벽 2시에서 3시까지 경행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도의 한 비구 스님은 행선으로 7년 동안 수행하였는데, 아라한이 못되어 7년을 더 행선하며 수행하였고, 그래도 못되어 또다시 7년을 서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행을 하여 21년째,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행선의 방법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위빠사나 수행에서 하는 방법으로 머리를 똑바로 들고, 눈은 자신의 키 정도 앞을 내려다보고, 천천히 작은 보폭으로 걸으면서, 발을 떼서 옮기고 딛는 동작 하나하나를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을 들면, ‘왼발, 앞으로, 내려, 놓음’이라고 알아차리고 또 오른발을 천천히 옮겨 놓을 때 ‘오른발, 앞으로, 내려, 놓음’이라고 알아차리며 각각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몸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의식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5-10m 정도의 일정한 거리를 오고 가며 자신에게 맞는 한 생각 수행방편을 들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 때 상황에 따라 걸음의 속도나 보폭, 걷는 방향 등을 변화시키며 다양하게 행선할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순간순간 몸의 움직임을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라면, 이 방법은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기 보다는 한 생각 수행방편을 이어나가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 두 방법 중 어느 하나이든, 수행이 어느 정도 성숙될 때까지는 좌선과 행선의 비율을 1:1로 유지해야한다고 합니다. 특히 새벽에는 뇌세포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이므로 가능한 30분 이상 행선을 한 후에 좌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졸음이 밀려드는 새벽시간. 지대방을 박차고,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며 행선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특정한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1초가 바쁜 운문의 일상이지만, 자신의 걸음과 마음을 한 템포 늦추고 그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알아차리며, 혹은 화두 한 생각이나 불보살님들의 명호, 진언 등을 부르며 행선해 보면 어떨까요. 이렇듯 내딛는 한 걸음 한걸음에도 삼매를 닦는다면, 쉼 없이 떨어지는 하나하나의 작은 물방울들이 마침내 큰 돌을 뚫어 버리듯, 언젠가는 저 두터운 무명을 뚫고 꼭 부처를 이루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정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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