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공성과 자비 (지원上스님)

운문사 | 2005.12.26 17:22 | 조회 2520

저희 사교반은 이번 철 내 금강경을 보고 있는데요. 오늘 저는 경을 보면서 느꼈던 점을 간소하게나마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 각자의 생에는 주어진 목표와 숙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숙제를 스스로 자각하든지, 모르든지 간에 저마다 그 숙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속에서 나름대로의 고통과 방황과 좌절을 반복하게 되죠. 윤회란 바로 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설명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가 그러했듯이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들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방황을 거듭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운좋게도 불법을 만나, 깨달음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방황의 목표를 정할 수 있게 되었죠.

깨달음이란 것, 진리라는 것!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자, 우리는 그를 수행자이며 보살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보살은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가. 그 마음을 어떻게 하면 항복받을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우리와 너무도 가까운 금강경의 핵심 내용이자 문제의식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는 법문이 가능했던 것이죠. 어디 수보리 뿐만이었겠습니까. 소위 깨달음을 구하는 이 세상의 모든 수행자에게 이 질문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절박한 질문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상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고,

착하지 않는 보시를 행하라.

우리가 보고 있는 일체 유위의 상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라.

안으로 일체의 집착을 부수고 밖으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되, 그 마음은 어디에도 머무르는 데가 없는 자. 그가 진정한 깨달음을 구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시죠.

우리는 흔히 상을 없애는 문제, 또는 공성에 치우쳐서 금강경을 이해하는 경향이 짙은데요, 육조스님은 균형적이고 좀더 현실적인 관점을 제시하십니다.

일체 중생을 공경하는 것이 곧 마음을 항복시키는 것이다.

이 말은 금강경 전체를 포섭하고도 남음이 있는 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상을 없애고 마음의 주착을 제거해서 무루의 복덕성을 성취하고자 하는 수행자에게 일체 중생을 공경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궁극적인 목표일 것입니다.

일체중생을 공경하는 자는 일체 중생에게서 진리를 보는 자이며, 연기의 진리 즉 공성과 자비를 동시에 실천하는 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체중생이 곧 부처임을 볼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야말로 진정한 발심을 했다고 볼수 있죠. 언제나 실천이 어려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성과 자비!

이 두 단어는 금강경을 보는 요즈음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화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두 단어를 떠나서 설명할 수 있는가. 비록 이런 마음조차 분별을 여의지 못한 중생심일지언정, 여기에 수행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일체 중생을 공경하라는 육조스님의 말씀은 평범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일 것입니다.


운문사에서 3년을 사는 동안 다 기억해 낼 수도 없는 그 수많은 갈등들은 결국 각 개인의 相들이 부딪혀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한 다라이에 감자들을 쏟아붇고 한꺼번에 씻어내는 작업에 비유하곤 합니다.

이렇게 각 개인들의 껍질들이 무식하게 벗겨지는 과정은 고통스러운 일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 틩겨져 나가는 감자도 있고. 상하는 감자도 생기고, 더 두꺼운 껍질을 입는 감자도 생길 수 있겠죠.


그러나 머무르는 바 없이 베풀 수 있는 마음을 얻고,

진정코 너와 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기적 이해, 공성에 대한 성찰을 하는데 그 고통들은 더없이 훌륭한 밑거름이 되리라 저는 믿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즈음에 가슴을 울리던 달라이 라마의 말씀이 있어서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우리나라 철학자가 달라이라마에게 찾아가 직접, 당신이 얻은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죠. 그분은 아주 담박하고 진솔하게 당신의 살림살이를 풀어 놓으십니다. 문자가 아닌, 실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체험적 진리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여러분들과 함께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끝으로 부족한 법문 마칠까 합니다.

지금 내 몸은 예순하고도 일곱해가 된 몸입니다.

그런데 나의 정신, 나의 생각은 항상 맑고 깨끗합니다.

저는 자라나면서 어느 순간엔가 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세계가 넓어지더군요.

뭔가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조금 알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공이라는 진리는 내가 살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물전체를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자비를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을 물으신다면,

이 공과 자비를 통해 무엇인가 조금,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통찰을 얻었다는 것, 그런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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