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내 마음의 부처(동현스님)

운문사 | 2006.03.20 13:19 | 조회 3235

그 옛날 달마대사께선 이 땅에 일심의 법을 전해주셨고 그 후의 많은 선사들께서는 평상심이 도라 즉심즉불을 설하셨습니다. 그 후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이렇게 청풍료 법상에 올라 설사 하늘에 닿는 키는 틀리겠으나 땅을 밟는 그 처음은 같지 않을까 생각하며 행자시절 겪었던 ‘마음이 부처’라는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나의 은사 스님은 있는 그대로 살아라, 거의 자유방임주의형, 난 내 맘대로 살래요, 자유를 가장한 방종형의 고집 센 상좌였습니다. 가끔 은사 스님과 주고받는 이야기.

“동현아, 요즘 공부 좀 하고 있니?”

"스님, 전 농사 지을건데요.“

“야, 제발 저 취나물이나 제 때에 뜯어먹고 살아라.”

“동현아, 도량에 개똥은 깨끗이 치워야 한다.”

“스님, 불구부정이라면서요.”

“동현아, 너 나무 밑에 밥 갖다 묻었니?”

“참회진언 했는데요.”

그날 이후 난 백일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설픈 염불에 어긋나는 목탁 소리 임에도 내심 스스로를 무척이나 기특해하며 기도를 하던 중, 어느 날 난 법당의 부처님을 보고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새까만 얼굴에 얄궂게 말려 올라간 검은 팔자수염, 욕심과 심술로 툭 불거진 볼, 질투심으로 이글거리는 찢어진 두 눈. 이것은 정말 부처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우, 관세음보살. 내가 이제껏 이런 못된 놀부영감에게 마지를 올렸다니. 이 절은 분명히 잘못됐어. 여기 살다간 정말 큰 일 나겠다. 빨리 머리를 길러서 나가는 수밖에 없어.” 하고선 때를 기다리며 그럭저럭 살다보니 동짓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 아침, 정말 웃지못할 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침 일찍 팥죽을 쑤러 온 동네 할머니가 나를 불렀던 것입니다.

“행자님, 불 좀 댕기소.”

가스관으로 연결된 큰 가마솥에 불을 붙여 달라는 얘기였습니다. 짜증스런 마음으로 대답도 하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 나간 나는, “할머니, 잘 보세요.” 하고선 일단 가스벨브를 열어 재치고 왼손엔 가스 파이프를 오른 손엔 성냥불을 켜들고 다음 아주 무식하게 넣지 않아도 되는 머리까지 함께 아궁이속으로 쑥 들이밀었던 것입니다.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번쩍 하는 불 무리가 얼굴을 거세게 쳐내면서 나의 몸은 벌러덩 뒤로 자빠졌습니다. 그래도 정신은 있어서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머리를 감싸쥐고 곧장 정랑 거울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거울을 보는 순간, 머리는 빠글빠글 바싹 오그라들어 부시시 부서져 내렸고, 꽤 짙었던 눈썹은 희끄무리하게 다 타 버렸고 속눈썹도 그 길이가 1mm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너무나 다행이었던 것은 눈에 보이는 털이란 털은 다 탔지만 달리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부처님을 부르며 감사했습니다.

그 날 이후, 일단 떠나는 것은 보류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밥 한 수저 뜨고 물 한 모금 마시고 한 걸음 떼고 한 마디 내뱉는 것에서부터 개똥치우고, 시주물을 아끼는 것에까지 실로 모든 곳에 부처님으로 가득 들어찼습니다.

순간순간 부처와 하나 되어 살려는 나의 노력과 함께 백일기도가 끝날 무렵 난 법당에서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검은 팔자수염과 툭 불거진 심술보, 질투심으로 이글거리는 찢어진 두 눈을 가졌던 그 놀부영감은 어디로 가고 그야말로 정말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멋진 부처님이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 참 이상하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아무리 쳐다봐도 분명 이 얼굴이 아니었는데...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순간 나는, ‘아, 이것이 바로 마음이 부처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동안 내 속에 욕심과 질투와 어리석음이 가득차 이 마음 그대로 놀부의 얼굴로 비춰졌다는 사실에 놀랐고 부끄러웠습니다.

『관무량수경』에 이르길, 여러분이 마음으로 부처를 생각하면 이 마음이 32상 80종호를 따라 부처를 지어가는 까닭에 이 마음이 곧 부처라 했습니다. 또 마조 선사께서 대중에게 시중하시길,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일부러 꾸미지 않고 이러니 저러니 판단하지 않으며 평범하다느니 성스럽다느니 하는 생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마음, 지금 이렇게 앉아 있다가 곧 편안하게 눕기도 하고 다시 걷다가 멈추기도 하고 형편에 따라 움직이는 이 모두의 마음 조작과 분별심을 떠난 이 평상심을 즉심시불이라 했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법당에 가시면 부처님과 꼭 하나 되어 보십시오. 정말 힘들고 지칠 때 내 마음속 부처님의 모습 자주자주 세밀하게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늦은 밤, 낯설은 큰 집에서 혼자라는 무서움에 온갖 망상이 미친 듯이 일어났을 때 그 불안한 마음을 편케 해줬던 청정한 그 목탁소리는 밤새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던 수도꼭지의 물소리였습니다. 저절로 일어났다가 저절로 맑게 정화되는 마음이랄 것 없는 이 마음속 깊은 곳 가장 청정한 곳에 부처가 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언젠가 스님, 깨달으셨어요? 하고 물었던 철없는 상좌의 물음에, “야, 니 똥 밑이나 잘 닦고 살아라.” 한 마디 툭 던지신 은사 스님. 일상생활 속에서의 마음이 부처라. 삐걱거리는 금당 마루를 지날 때 내 마음 혹시 삐걱거리는 것은 아닌지 은사 스님의 그 한 마디를 생각하며 발 뒤꿈치를 살짝 들어보곤 합니다.

대중스님! 마음속 부처님과 하나 되시기 바랍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