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오백나한 (동건스님)

운문사 | 2005.12.26 13:23 | 조회 3747

靑蓮座上月來生 三千界主釋迦尊 청련좌상월래생 삼천계주석가존

紫紺宮中星若列 五百大阿羅漢聖衆 자감궁중성약열 오백대아라한성중

나무 아미타불


제가 이 자리에 앉아보니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설법하셨던 모습이 지금 법문하는 이 청풍료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운문사 오백전의 구조를 보아도 지금 이 자리와 다름이 없습니다.


삼천 세계에 주인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푸른 연꽃 자리 위에서 달과 같이 나시고,

오백대 아라한 성중님께서는 자감궁의 안에

별과 같이 나열 되셨도다.


제가 봄철 오백전 부전을 살고 있을 때입니다. 한 젊은 청년이 10년 전에 운문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간 일이 있다며 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더니 운문사 오백전에 대해서 궁금하다며 저에게 소개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아는대로 열심히 소개를 했는데 다 듣고나더니 이번에는 오백나한 한분한분의 특성이 궁금하다는 겁니다. "오! 그것까지는 글쎄요." 하면서 스님들의 차례법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죠. 차례법문 때 꼭 이것을 주제로 해서 법문을 하겠다구요. 운문사에 한 번 더 오시는 인연이 되면 꼭 설명해 주리라는 약속도 함께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오백나한에 대한 이야기로 대중스님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운문사 오백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보처 미륵보살남과 우보처 제화가라 보살님이신데 정광불 혹은 연등불이라 불리워집니다. 이 두 보살님과 양쪽으로 정확히 오백 나한님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오백나한상은 원래 청도 적천사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어느해 홍수를 피해 비로전 비로자나 부처님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고 합니다.


이 오백나한의 기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부처님 열반 후 제1결집에 참가한 제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학설과 『법화경』「오백제자수기품」의 내용에 등장하는 제자들이라는 주장입니다.

오백 아라한 모두가 사성제를 깨닫고 십이연기의 법을 증득하였으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보살의 행을 실천하시는 분들입니다. 앞에 말한 두 가지 학설중에 제1차 결집에 동참한 오백나한님들의 전생담도 있는데요, 모두 오백마리의 박쥐였다고 하는데 이들은 인도 남해에 말라죽은 고목 나무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장사꾼들이 추의를 피해 피워둔 불길이 그만 박쥐들의 보금자리인 고목나무에 옮겨 붙어버렸답니다. 그 때 한 상인이 아비달마장을 외고 있었는데 오백마리의 박쥐들이 불이 붙은줄도 모르고 아비달마장 법문에 빠져 다 타죽고 말았답니다. 박쥐들은 그 인연으로 사람으로 태어나서 출가해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합니다. 하나의 일화로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본 원숭이의 일화도 있습니다.


이 오백나한 중 대표되는 나한님이 빈두로 파라타인데요, 우리가 잘 아는 빈두로 존자입니다. 빈두로는 동하지 않는다는 뜻의 이름이며 파라타는 재빠르다, 이롭다는 뜻의 성입니다. 원래 구사성 우전왕의 대신이었는데 우전왕이 그가 명석하고 성실한 것을 보고 그에게 출가하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은 그가 아직 계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통력을 자랑하였는데 부처님께 질책을 받고 남섬부주에 거주하지 못하고 서구야니주에 가서 불법을 널리 전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남섬부주에 있는 스승과 제자를 그리워하다가 부처님께 고향에 내려가게 해달라고 네 번씩이나 빌어 보았으나, 그때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에게 열반에 들기전에 영원히 남섬의 마리천에 거주하게 했으며 늘 세상에서 살면서 중생들을 위해 많은 복전을 가꾸게 했습니다. 파라타는 늘 흰머리에 눈썹이 긴 귀인상이었다고 합니다.

중국 동진시대의 도안법사는 자신이 정말로 불법의 본뜻을 바르게 옮겼는지 궁금하게 생각하고 기도를 했었는데, 그날밤 꿈에 길고 흰 눈썹을 휘날리며 야윈 노스님 한 분이 나타나서 '도안이 번역한 불경이 틀린 곳이 없이 정확하니 안심하고 널리 읽히도록 하라' 하셨답니다. 이 꿈에 나타난 노스님은 바로 빈두로존자라고 합니다.


이러한 오백나한 신앙이 우리나라에 전래한 시기는 대개 통일 신라말에서 고려초로 꼽고 있습니다. 불교가 극도로 융성했던 고려 때는 국왕이 직접 나한재를 올렸는가 하면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석왕사를 창건하고 오백나한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는 등 조선시대에도 크게 성행했답니다.

이 나한상의 형태는 일정한 규범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승들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롭게 표출한 것 같습니다. 오백나한님들의 특성을 그 청년에게는 다 이야기해주지 못했는데요, 꼭 한 번 더 온다고 했으니 이러한 이야기를 그 때 꼭 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부전을 살면서 자기가 맡고 있는 법당의 내력이나 특성 정도는 익혀서 부전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부처님 되세요.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