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 (윤우스님)

운문사 | 2005.12.26 17:24 | 조회 2739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는 시 구절이 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4년의 운문에 수많은 기억들을 되새기며…

'나는 어떻게 떠나야 뒷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는 망상히 끊임없이 드는 요즘입니다.

앞으로 보름이 남아 있지만 보름 동안에 모든 생활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누구나 마지막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렇게 아쉬운가 봅니다.

손도 꽁꽁.. 발도 꽁꽁... 모두가 얼어 버릴 것 같지만 떠남을 준비하는 이에게나 남아 있을 이 모두의 가슴만은 따뚯한 계절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차례법문을 하게된 화엄반 차막내 윤우입니다.


참 긴 시간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치문 첫 철 맨 앞줄에 앉아 상반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며 짜안한 그 무엇으로 가슴을 부여 잡고, 덕산의 방망이 한 대보다도 더 혹독히 저 자신을 일깨워준 한 마디 한 마디에 뜨거운 가슴으로 주먹 불끈! 쥐기도 했었는데요, 제가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모든 것이 소중한 추억거리가 되었건만 그 당시에는 왜 그리도 어렵고 힘들기만 했는지 …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마음의 조그마한 여유가, 아주 조그마한 마음의 여유만 있었으면 됐는데 말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벽암록의 한 구절입니다.

대중스님!

진정 오늘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떨리는 마음으로 입학시험을 치르고 운문사에 첫 발을 내딛었던 그 마음으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오늘의 순간을 살고 계십니까?

그 누구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삭발염의 하고 이 곳에 와 있으면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척도를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가슴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저는 저녁 하늘에 유유히 구름을 남기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하늘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아마도 일상에서 떠나 자유로움을 찾고자 하는 끝없는 열망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땅에 서서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있노라면 저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들이 타고 있을 것 같아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는 사람들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일까요? 아마도 아니겠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보다는 지난 어제를 후회하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결국 가야할 곳은 바로 한 곳이고, 진정 나 일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이 곳, 이 순간인데 말입니다. 자유롭고자 한다면 결국 자유로와 질 수 없고, 원하는 것이 있는 한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이 곳, 이 순간에 깨어있을 수 있는 수행자라면 순간을 영원처럼, 영원을 한 순간처럼 받아들일 수 있겠죠.

예전에 어떤 책에서 '청개구리'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습니다. 그 글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아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고요.


나는 배부른 것을 싫다고 하지만 배고픈 것을 더 싫어합니다.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잘난 체도 합니다.

나는 정직하자고 다짐하면서 화를 내고 시원해 합니다.

나는 참아야 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고 시원해 합니다.

나는 절약하자고 하지만 낭비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약속을 하고나서 지키고 싶지 않아 핑계를 찾기도 합니다.

나는 남의 성공에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합니다.


우린 스스로 청개구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청개구리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싫다고 싫다고 하면서도 좋아하고, 밉다고 밉다고 하면서도 보고있고, 세상이 살기 싫다고 발버둥 치면서도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살라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우린 청개구리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청개구리처럼 살고 있는지를 몰라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재고 판단하고 있나 봅니다. 배고프고 추운데서 도심이 발한다고 했습니다. 배부르고 따뜻한 이 곳 운문사에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타성에 젖어 물결에 휩쓸리듯 그렇게 지내는 순간, 우린 곧 청개구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벼움으로 몸서리 쳐질 때 한 번 조용히 눈을 감고 이 주인공에게 가만히 말해 주십시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 바로 오는 이 순간이다' 라고.

저는 4년 중에서 바로 오늘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오늘 이 가장 행복한 순간에 대중 스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더 행복합니다.

대중스님, 부처님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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