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조고각하의 마음으로(감로스님)

운문사 | 2005.12.26 12:47 | 조회 2759

시작에 앞서 지금까지 제 말과 행동에 상처받은 일체 유정무정 중생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낯익은 모습들이 떠난 자리에 푸른 바람의 집 청풍료에도 새로운 식구들이 새출발을 했습니다. 새로 시작하기 때문에 두렵고 두렵기 때문에 그 속에서 희망이 솟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바세계는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감인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 속에서 결국 우리는 끊임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합니다. 꿈에라도 한 번 보고픈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라리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가고 계십니까?

제가 처음 운문사에 왔을 때 참 넓고 크구나! 그리고는 황량한 앞산을 올려다보면서 저도 모르게 가슴이 시렸습니다. 왠지 저 황량한 산에서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봄이 무르익지 연둣빛 나무들이 빼곡이 차올라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에메랄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온 지구를 에메랄드로 다 덮고자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에메랄드로 만든 신발을 신고 에메랄드로 장식한 옷을 입고 지구를 거닌다면 어느 만큼은 비슷한 효과겠지요. 그처럼 우리의 국토가 전부 푸른 청산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건강하고 푸른 생각의 신발을 신고 국토를 거닌다면 어떨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에 시애틀이라는 이름의 한 인디언 추장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떠나겠소. 대지는 당신들과 우리들의 어머니요.

그런데 당신은 우리더러 대지를 팔라하오.

어떻게 시냇물 출렁이는 소리, 바람소리, 새 울음소리, 다람쥐, 사슴, 코끼리를 팔 수 있겠소.

당신들은 솔잎을 먹어 치우는 송충이와 같소. 우리는 이곳을 떠나겠소."

200년이라는 시공을 초월해 그의 목소리가 그대로 가슴팍에 박혀 옵니다.

또 어느 선사와 동자승의 살가운 풍경도 떠오릅니다.

"시자야! 그대 어깨의 눈을 털어 내면서 어찌 대나무의 눈을 쓸어 내리지 않느냐?"

우리의 붓다께서는 나무 아래서 태어나시고 나무 아래서 깨닫고 나무들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열반에 드셨습니다. 지대는 조금 습할지라도 이만한 자연 조건 속에서 야생의 하늘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복된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에 저는 작은 망태기에 잔돌을 수북히 담아 어깨에 걸쳐 매고 토끼와 꿩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물론 한번도 잡아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또 잡아서 어쩌자는 건 아니었지만 눈이 수북히 쌓인 뒤에 그놈들이 남겨놓은 발자욱 따라 산길을 오르는 것 자체가 작은 행복이었습니다. 소로길로 접어 어느 만큼 가다보면 암자의 은은한 풍경소리가 어린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잿빛 두루마기를 보며 느꼈던 그리움의 여운, 알 수 없는 싸아한 고독의 무게가 지금의 저를 있게 했을지 모릅니다. 새벽이면 몰래 까치발 뛰고 노스님집 밤나무의 이슬 뽀얀 밤톨을 주머니 불룩하게 담아 오곤 했습니다. 네잎크로버를 딴다고 채송화 꽃 과꽃 즐비한 화단을 질겅질겅 밟고 다녀 꾸지람 듣던 기억도 납니다. 살아가면서 더러 마른 논바닥 갈라지듯 메마른 가슴에 그러한 추억들은 농도 짙은 거름이 되어 줍니다.

옛날 중국에 '양주'라는 학문에 밝은 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웃사람이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노라고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그래, 겨우 양 한 마리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필요하오?' 그러자 양 주인은 '길이 여러 갈래라 양이 어느 길로 갔을지 모른답니다.' 이 말을 들은 양주는 종일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은 안했습니다. 걱정이 된 제자들이 문병을 오니 양주는 '내가 걸어온 학문의 길도 실속은 없고 갈래만 무성한 것 같구나!' 라고 탄식하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걸어가십니까?

걸어가는 그 길에 만족하십니까?

경상 맨 밑바닥을 더듬어 빛바랜 낙엽처럼 무심히 꺼내 읽는 글귀가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수필 중 '운문사의 자매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같이 재음미하고 싶습니다.


그 곳 호거산 자락에도 봄 기운이 넘치겠지요. 운문사를 생각하면 흰 고무신이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그 광경이 떠오릅니다. 이 기회에 강원의 학인들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려고 합니다.

첫 째, 쓸모 있는 공부를 하십시요.

둘 째, 개성과 특성 있는 수행자가 되십시요.

셋 째, 여성적인 속성에서 벗어나 아녀자가 되지 말고 대지의 어머니가 되고 佛母가 되십시요.

넷 째, 여럿 속에 섞이면서도 은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속이 비게 됩니다.

다섯째, 수행자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오늘 핀 꽃은 어제의 그 꽃이 아닙니다.

끝으로, 졸지 말고 항상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정랑에 앉아 있다가 저도 모르게 손뼉을 딱 쳤습니다. 그 때 제가 읽고 있던 글귀는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나니'였습니다. 그것을 역으로 풀어보았습니다.

'크게 복 짓지는 못했으나 지금부터라도 검소하게 살자'

부처님께서 열반 무렵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적절할 때의 알맞은 언어는 침묵과도 같나니라'

오늘 저는 반성합니다. 내 마음의 뿌리가 행여 우주를 더럽히지 않았는가?

우리의 남은 시간들이 매순간 진지하고 소박한 순간들로 이어지기를 발원합니다.

아울러 이 인연공덕으로 일체 유정무정 중생들이 다 같이 성불하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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