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다만 증애만 없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기나스님)

운문사 | 2005.12.26 12:56 | 조회 2657

수행과 앎이 없는 이의 법문을 듣고 싶지 않은데도 들어야 하며, 이러한 상황을 짐작하면서도 버얼건 아궁이 속에서 덜익은 고구마를 되집어 내야 하는 시절인연이 도래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라」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환해지고 즐거운데, 나쁜 인연은 왜 이렇게 피하고만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저에게 맺힌 원결을 풀려고 찾아온 인연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보기싫고 미운 사람은 행여나 마주칠까 되도록이면 그 사람이 갈 것 같은 행로를 피해서 골라 가는데도 꼭 맞닥뜨리게 되니 참으로 이상한 노릇입니다. 안보려고 피하려 하면 할수록 경상짝지가 되던지, 물당번이 되던지, 혹은 같은 밥자리, 이부자리 옆짝지나 소임에 걸리고 맙니다.

이런 인연은 제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니 부처님께서도 참 너무 하시지요. 괴로운 중생 좀 도와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꼭 붙여주시는 부처님 뜻은 아마도 "지금 네가 여기서 못 뚫고 나간다면 깜깜하게 막혀서 한 걸음도 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 같습니다만 중생의 마음이 어디 그렇습니까?

한 번 마음의 골이 깊어지면, 나중엔 뒤통수만 보아도, 발꿈치만 띄어도, 이상하게 감긴 목도리만 보게 되어도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려지니 이것이 바로 살아서 만나는 지옥일세!!!

참으로 고통 중의 고통이요, 괴로움 속에 괴로움이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씀입니까?

정녕 불제자라면 지금 이 귀한 자리에서 직접 극락세계를 다녀온 이야기라던가 대중 스님들께 참 신심나는 말씀을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제 마음이 넓어지면 삼천대천세계를 다 내 품에 안을 것 같은데, 마음이 좁을 때는 바늘 하나 꽂을 땅이 없습니다. 지금 제 마음의 상태가 기쁘고 즐겁다면 누가 싫은 소리해도 히히 웃고 넘길 수 있겠지만, 신경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을 땐 별 것도 아닌 일에 다른 사람에게 도끼날을 세워 상처를 주고 맙니다. 그러고 나면 제 입은 가벼워질지 모르나, 제 마음은 그 반대로 더욱 무거워지고, 그 사람에 대해서 심하게 공격한 것이 아닌가 싶어 나중엔 미안한 마음까지 몰려와 또 무거워지고 제 자신까지 싫어지고 맙니다. 금방 후회하고 말 것을 순간을 못 참아서 구업을 짓게 됩니다. 가벼워지고 싶은 제 욕망은 찜찜함 속에서 조금도 견디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정말 운문사에서 행복해지는 길은 서장이나 치문에 미치는 길 밖에 없나보다. 그럼 내가 덜 미쳐서, 자꾸 바깥으로 안테나를 돌리기 때문에 그런가? 기도하는 마음 없이 멍하게 살아서 그렇겠지...'

이런 저런 번뇌 속에 갇혀 있을 때 짧은 법문 한 토막을 만났습니다.

聰明不能適業이요, 아무리 총명하더라도 업보를 대적 할 수 없고

乾慧未免苦輪이라. 마른 지혜로는 고의 윤회를 면하지 못하느니라

고개 숙인 사이로 확 부끄러움이 몰려 왔습니다. 저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겪었고, 지금 겪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내가 지어서 내가 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구 치달리기만 했습니다. 제가 정말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람이라면, 앞뒤 돌아보지 않는 치열한 수행으로, 제 마음에 틈이 없었더라면 이런 저런 감정의 헛그림자에 끄달리지 않을 것을... !!!

정녕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 수 있는지, 얼마나 울어야 가슴이 열리고, 얼마나 참아야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네모 세모 같은 제 마음이 대중 속에 섞여서 둥글둥글 예쁘게 될까요. 모두 전전생부터 오늘까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팅가팅가 놀았던 과보인 것 같습니다.

치문 숭행록에 보면 고소하게 삶을 빛낸 우리들의 선배님들께선 이러한 말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 갖가지로 받아쓰고 있으면서 배고프지 않은데도 먹고, 춥지 않은데도 입으며, 더럽지 않은데도 씻고, 잠이 오지 않는데도 잘도 잡니다. 도안이 아직 밝지 못하고 번뇌가 아직 다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심장을 찌르는 소립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각에 저는 감정의 찌꺼기 속에서 두출두몰 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놈입니까?

저희 스님께서는 어느 날 저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너희 상노스님께서는 인욕보살이라는 칭호를 얻으셨다. 원래 절집에 오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그러면 몇 년이니? 시집살이 9년을 잘 넘겨야 네가 하고자 하는 길이 순조롭게 열린단다 ..."

달마대사께서도 면벽 9년 인행하셨는데, 제가 안해서 그렇지 못할 것은 없겠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답은 간단한 것 같지만 지극히 어렵고 힘든 방법인 것 같습니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여러 마음이 청정하고 여러 마음이 청정하면 한 국토가 청정하고 한 국토가 청정하면 여러 국토가 청정하다고 하셨는데, 내 마음 먼저 닦지 않고 어떻게 극락 云云 하겠습니까.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없으면 된다고 하셨으니 이렇게 내 마음 청정해지면 이차인연공덕으로 온 세계 밝힐 수 있겠지요. 그렇게 가는 길은 인욕바라밀 닦는 길일 뿐 달리 또 무슨 수행법을 찾겠습니까. 그저 참고 참을 뿐. 그저 피안을 향해 가고 갈 뿐.

다같이 열심히 열심히 수행하여 부처님 은혜에 보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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