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불사 (법영스님)

운문사 | 2005.12.26 12:57 | 조회 2731

싱그러운 녹음이 도량을 가득 채워가고 있습니다.

불이문 옆 담쟁이가 운력에 바쁜 저희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여유를 주고 있습니다. 금당에서 겨울철 방학을 보내던 중 우연한 기회에 금당 뒷문에 비춰진 비로전의 우아한 자태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점차 밝아오는 아침 서광에 비로전 문살의 연꽃은 앞다퉈 피어나 향기조차 느껴지듯 그대로가 화장세계로 조상의 숨결이 알알이 되살아남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향기를 풍기지 못하고 있는 요즘, 불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최근 서구 사회의 현대화 물결이 밀려들어오면서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거대한 건물들이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것처럼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어색하게 우뚝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 물결이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절집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얼마전 저는 모사찰에 신도님들과 순례차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눈에도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운 큰 도량에 어마어마한 불사를 해두었고, 또 진행중인 곳도 있었습니다. 거대한 산줄기를 잘라내어 진입로와 주차장 등을 만든 그 엄청난 불사들은 주변의 자연이 파괴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 큰 도량을 지켜야 할 스님네 모습은 드물었고, 잘 훈련되어 보이는 화주 보살님네만이 곳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대작 불사가 만들어 낼 후유증이 과연 불교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염려스러웠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몇 년 전의 일이죠.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시대 후기에 지어진 목조건축물로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백제식 건축양식을 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건축미가 매우 뛰어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편안하면서도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대웅전을 그대로 모방하여 시멘트 건물로 거대한 규모의 루문(樓門)을 지어 그 좋은 전망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시주돈을 사용하고도 수덕사가 지녔던 그 고풍스럽던 옛 가람의 향취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를 아쉬워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예를 들었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이와 유사한 크고 작은 불사가 오늘날 우리 불교문화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스님!!

우리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지닌 본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을 위해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반복되어가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급급한 나머지 전통문화를 돌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불교계의 몰이해 또는 무관심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영리를 도모하는 상업성이 결탁하면서 사찰불사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불교계에서도 거상 조성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 규모와 거기에 들어갔을 막대한 금액 외에는 전혀 감명을 주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절집까지 이렇게 거대주의의 물결에 타협해서 상품화 시켜야하는 걸까하는 의구심만 들뿐입니다.

대중스님!!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앞으로 해야할 또 하나의 과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땅에 새로운 불교문화를 꽃피우고 기존의 문화유산의 품속에서 얼을 찾아내어 새로운 방법으로 불자는 물론 일반대중에게도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알기 쉽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어주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참다운 불사가 아니겠습니까? 신라시대 원효대사께서는 글자를 거의 모르는 일반백성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등 무애가로서 백성들이 사는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셨습니다. 바로 이 대자비심으로 우리 대중불자의 눈높이와 필요에 부응되는 활기 넘치는 불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써 여러 뜻 있는 스님들께서는 사이버 공간에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향하여 문을 열고 기다리십니다. 시간을 다투어 바뀌어 가는 현대 문화 속에서 불교전통문화의 보물을 캐내어 다시 다듬어 재사용하지 않고 겉모양의 위용만 자랑한다면 박물관 유리관 벽 속의 불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자연계와 인간계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불사를 일으키고자 발원하시는 대중스님, 쉼 없고 장애 없는 정진을 발원합니다.


행자여 돌아 오라!

진리의 고향으로!

망상을 쉬고 가라! 헛길을 가지 마라!

입으로 맛들임은 시원한 선열미요

몸 위에 입은 것은 누더기 한 벌뿐이로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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