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수행자와 몸 (혜인스님)

운문사 | 2005.12.26 16:15 | 조회 2892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혜인입니다.
엊그제 대운문사에 입방을 들이고, 저희반 백씨, 차씨스님이 차례법문 준비하는 걸 보며 이 힘들고 피곤하고 무정하게 더디기만 한 운문사 시계바늘이 과연 돌고돌아 제 차례가 오기나 할까 한숨을 내쉬었는데, 벌써 26번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저한테 주어진 이 시간에 우리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희 절에는 공양주 보살님이 한 분 계셨는데, 마음이 그지없이 좋은데다 음식 솜씨가 너무 좋아 행자시절 저의 유일한 벗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살님이 어느 날 맛있는 전을 부쳐 저에게 주고는 돌아서는데 바지 사이로 똥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보살님을 부르고 보살님은 저보다 더 놀라서 어찌할 줄 몰라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방에서, 후원에서, 정통에서 저는 그 보살님이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흘린 똥덩어리를 수시로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보살님이 해주는 밥을 더 이상은 비위가 상해 못먹었고, 그 보살님은 늙은 시부모와 병든 남편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지만 일을 그만두고 자신도 병든 몸을 치료해야만 했습니다.

이번 출타 때에 집에 갔더니, 그 보살님이 당뇨합병증으로 썩어가는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눈은 실명이 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몸뚱아리가 전재산인 그분이 이제 몸을 못쓰게 된 것입니다. 연락을 해보았더니 그 보살님은 저에게 울면서 다리가 잘려나간 부분만 만져보며 그냥 그렇게 지낸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인간의 몸이란 무엇이고 수행자로써 이 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 불교에는 오정심관이라는 관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 부정관이라 하여 탐심이 많은 중생에게 그 탐욕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부처님께서는 부정관을 닦으라 하셨습니다. 부정관은 곧 그 몸이 부정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입니다. 이 관법은 고요히 앉아서 이 몸의 존재를 세 단계로 나누어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몸은 당초에 연꽃송이 같이 깨끗한 곳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정 · 모혈이라는 애욕의 부정한 인연에 의하여 그것이 응결되어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대장과 소장과 중간 음식물이 소화되는 부정한 위치에 서서 10개월 동안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자라납니다. 이것을 생체부정이라 합니다. 또 현재 이 몸 안으로는 오장육부가 있고 밖으로는 귀, 눈, 코, 입, 팔, 다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귀에는 귀청, 눈에는 눈꼽, 입에는 침, 그리고 똥, 오줌이라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 늘 흐르고 있으며, 안으로는 위장, 대장, 소장에서 늘 음식물이 소화되고 부패하여 똥, 오줌으로 화하는 부정물이 가득차 있으며 모리, 손발, 몸에는 늘 더러운 때와 먼지, 땀이 뒤덥혀 있습니다.

옛 도인은 그 몸을 <똥오줌을 담은 포대며 피고름 주머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피가 살아 활동할 적에는 더러운 줄 모르지만 일단 피의 활동이 정지되면 고름이고 썩고 냄새나는 부정물인 것입니다. 그런 피로 채워진 것이 몸이며, 썩어 소화된 음식물의 기운에 의하여 그 생명이 지탱되는 서글픈 존재입니다. 이렇게 관하는 것을 현상부정이라 합니다. 또 마지막으로 육신은 늘 아름답고 젊고 건강한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며 일단 죽으면 몸은 검푸른 빛으로 변하며 피는 응결되어 썩기 시작하고 오장육부 사지백체가 다 같이 썩어 문드러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피와 살가죽은 다 사라지고 힘줄에 싸인 뼈만 남았다가 다시 힘줄도 없어지면 뼈마디만 앙상하게 남는다라는 구의부정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려는 자는 이 부정관을 먼저 닦게 하였는데 7일, 14일 업이 둔한 자는 21일, 49일 내지 6개월까지도 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좀처럼 정화되지 않는 탐심과 애욕을 죽은 시체를 옆에 두고 실제 썩어가는 상을 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불제자들은 그저 문자로만 이런 부정관을 접하고, 너무 냉정한 시각으로 몸을 경시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몸이야말로 부처가 되는 그날까지 잘 이끌어가야할 수행의 밑천인데 말입니다.
지금 서울에서는 인체신비전이라는 놀라운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독일의 군터 본 하겐스라는 해부학 교수가 의학 실험용 시체의 체내 수분과 지방을 특수한 플라스틱으로 교체하여 보통의 환경에서도 썩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인체세포와 자연적인 피부 주름 등 미세한 수준까지도 그대로 유지하며 건조하고 냄새가 없고 말 그대로 움켜잡을 수도 있게 만든 인체표본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프라스티네이션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발명덕에 의대생이나 일반인들에게까지 인체의 모든 부분을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프라스티네이션이란 신체의 수분을 아세톤으로 교체하고 또 몸안에 남아있는 이 아세톤은 반응성 플라스틱으로 교체하여 프라스티네이션이라는 표본으로 보존 처리하는 것입니다. 즉 인체를 플라스틱처럼 단단하게 만든 것입니다. 인체의 모든 부분을 플라스틱화 했기 때문에 근육이나 피부같은 부드러운 신체부분을 3mm 두께의 슬라이스로 만들수도 있으며 가로, 세로의 단면들로도 만들수도 있고, 전신을 그대로 표본화해서 인간 내부의 모든 장기, 운동계통, 신경계통, 호흡기계통, 생식기관, 어머니 태내의 태아 등 우리가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우리의 몸의 내부를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옛날처럼 썩어가는 시체를 옆에 두고 부정관을 닦을 수는 없지만 이 전시회의 인체 표본들을 보면 새삼 몸에 대해 생각을 다시하게 됩니다. 사실 객기어린 말로 우리의몸이 정육시장에 내걸린 고깃덩어리와 하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었지만 말입니다.
전통적으로 불교수행자들은 몸을 조복받고 몸의 청정을 위해서 고행의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몸은 번뇌와 고통의 덩어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은 단지 버려야만 하는 껍데기일 뿐일까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몸이야말로 부처를 이룰 그릇인데 말입니다.

대장경의 여러 곳에서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렵지만, 불법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라는 정형구가 있습니다. 몸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위력적인 업력의 실현체이므로 오히려 마음보다 더욱더 깊고 밀도 있는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불교 수행의 최로의 출발점은 바로 몸으로 인한 악업의 연쇄작용을 끊고 이몸을 지혜의 그릇으로 사용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밀린다 팡하에서는 나가세나 존자가 밀린다 왕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출가자에게는 몸이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출가자는 육신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수행을 이루기 위해 육신을 유지합니다.
대왕이여, 육신은 상처와 같은 것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출가한 자는 육신을 상처처럼 보호합니다.

대중스님.
법체를 소중히하여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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