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승은 화이다 - 사집반 혜정

최고관리자 | 2016.01.26 15:31 | 조회 1255

()은 곧 화()입니다.


사집반 혜정(12번)


청풍료. ‘파란 바람이 부는 집’에 모인 대중스님들, ‘승(僧)은 곧 화(和)입니다.’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할 사집반 혜정입니다. 불교사전을 보면 승이란 ‘승가, 화, 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승은 곧 ‘화합한다’의 화할 ‘화(和)’라고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논어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화합하나 같아지지는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화합한다는 것은 나와 상대가 같아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화(和)라는 것이 나와 상대방이 다름을 인정하고 승인하는 관용의 논리이며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논리라면 동(同)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치 않고 나의 기준에 맞추어 흡수하고 지배하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화합의 이치는 부처님께서 각자 홀로 스스로 수행할 것을 강조하시면서 동시에 스님들이 모여 승가를 이루어 살 것을 권하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듯합니다. 얼핏 보면 운문사의 온 대중스님들이 정해진 일과 속에서 모두 똑같이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각자 자신의 업에 의해 만들어진 각자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승가가 화합이란 이렇게 업이 다른 스님들이 함께 살며 각자의 업에 맞는 수행을 하되 서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의 업이 다름을 바르게 이해하며 화합해가는 과정이 또한 큰 수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이러한 화합을 위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집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전 요사이 마음에서 순간순간 일어나는 ‘싫다’라는 그 느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화합이 깨지고 분쟁이 일어나는 그 시작은 다름 아닌 바로 이렇게 순간순간 일어나는 ‘싫다’라는 미세한 느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상태는 주변에 알게 모르게 전달되어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어나게 만듭니다. 따라서 서로 화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늘 살펴 지금 어떠한 성냄이나 싫은 마음이 없는지를 잘 보아야 합니다. 만약 ‘싫다’라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을 그 순간 알아차려 그 마음을 쉽니다. 이렇게 한 마음 쉬면 그 자리에 공간이 생깁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들, 내가 경험한 것과 다른 것들, 내가 거부하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나’라는 허망한 틀에 묶여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하는 좁고 삿된 마음의 성향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내가 사라지는 해탈의 맛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승은 화’라는 말은 곧 ‘승은 무아’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스님들이 함께 살며 화합해 가는 과정은 내가 점점 엷어지는 ‘무아’로 가는 수행의 여정인 듯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에서 보면 어떤 소임을 살 때 그 소임을 잘 살고 있는지의 여부는 그 소임을 사는 과정에서 내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점점 엷어지고 있는지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소임을 살며 내가 점점 엷어지고 마음이 점점 비워지고 넓어진다면 그 소임을 잘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없이 사는 소임자의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화합의 분위기가 생성됩니다. 지금까지 개인적 수행의 측면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다른 하나는 승가 공동체에서 조직적으로 만들 수 있는 화합의 공간에 대한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승가의 화합을 위한 자리 중 대표적인 것이 포살과 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스님들께서도 모두 아시는 대로 자자는 여름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 안거생활을 함께 한 승려들이 모여서 각자 안거 기간 중에 무슨 허물이 있었는지를 동료 스님들에게 묻는 의식입니다. 승려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려 대중 앞에 합장을 하고, 동료 스님들에게 안거 기간 동안 자기의 언동에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를 지적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 때 동료 스님들은 이때 지적할 것이 있으면 지적하고 없으면 가만히 있습니다. 이것은 서로 간에 허물을 지적하고 참회함으로써 승려 본연의 청정함을 유지하려는 제도로, 따라서 자자를 통해 청정해진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면 더욱 큰 공덕을 받는다고 합니다. 운문사 자자도 이러한 자자의 본 뜻을 좀 더 잘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봅니다. 서로를 더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화해의 자리, 그래서 모두 청정한 마음으로 다시 화합하는 아름답고 숭고한 자리로서의 자자를 상상해봅니다. 모 강사스님께서 주신 아이디어를 빌려 하나의 예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어떤 아파트촌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모든 전깃불을 다 끄고 촛불만 켜는 밤이 있다고 합니다. 이 깊은 산 중에 살며 전깃불 없는 적막함도 경험할 겸 촛불 하나 켜 놓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시간으로서의 자자는 어떨까요? 어떤 특별하고 거창한 형식보다는 자자의 본뜻을 잘 살리면서 작게나마 진실한 마음이 모인 소박한 자리를 상상해 봅니다. 지금까지 짧게나마 ‘승은 화입니다.’라는 주제로 승가의 화합은 서로의 다름을 바르게 이해하며 그 가운데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으로서 이것은 다름 아닌 내가 점점 엷어지는 ‘무아’를 향한 수행의 과정이라는 제 소견을 말씀드렸습니다. 대중스님들, 고요하고 깊은 겨울밤처럼 각자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 보시는 이 겨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파란 바람이 부는 집, 이 ‘청풍료’에서 열릴 눈 푸른 스님들의 기백과 신선함이 담긴 따뜻한 화합과 화해의 장으로서 운문사의 자자는 어떤 모습일까 한번 쯤 상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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