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하심(下心) - 사미니과 도림

최고관리자 | 2016.07.26 10:33 | 조회 870



下心

                                                             도림 / 사미니과


사춘기 시절 어느 날 문득 “나는 혼자다. 항상 곁에 계시는 부모도 친구도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고 알지 못하구나.”라는 것을 깨닫고는 정신적인 방황과 함께 헛헛함이 제 마음을 차지했습니다.
이 헛헛함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고 이 헛헛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방황을 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허무함은 채워질 수 없었고 히말라야의 4,000m의 고지를 밟아도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헛헛함을 걸어 다니면서 달래던 버릇이 있습니다,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스페인 카미노를 걸으면서 나를 정리한 후에 출가하자 생각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는 급하게 짐을 꾸려 떠났습니다.
같은 길을 비슷한 속도로 가다 보니 길동무가 생기고, 나를 들여다보며 정리하기 보다는 친목을 다지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의도와는 다른 여행이 되었고, 아쉬워서 네팔과 인도로 넘어가서 부처님께서 머무셨던 곳을 다니면서 잠깐 동안 명상을 경험하고, 인도 쉬라바스티 기원정사에서는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곳에 동안거의 한 철을 나기 위해 오신 스님들과 함께 머물면서 기도를 받았고 108배 이상의 절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저에게 제 인생의 기도라는 것을 처음 시도해 보면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법에 대해 오고가는 대화를 들으면서 그제야 신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정사에서 한 철을 났던 인연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지금의 은사 스님을 만나 저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출가해서 제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로 하심(下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익혔던 제 나름의 가치관과 습관들을 다 내려놓아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거슬러 가야 했습니다. 새로 태어나자는 각오로 출가한 저는, 시시비비 분별망상에 꺼들리면서 제 스스로 무수한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스스로를 참 많이 힘들게 할 뿐 아니라 저와 함께 살고 있던 저의 은사 스님과 사형을 참 많이도 괴롭혔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내려놓자’ 저를 다독이며 저를 표현하지 않고 무조건 억눌러 참으면 하심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나에 대한 집착과 자만심은 그대로 두고 무조건 참는다고 하심이 되겠습니까? 참는 것은  한계가 있어 폭발했고, 폭발하는 것도 참 잦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런 저를 붙잡고 걱정도 하시고, 기도도 시키시고, 설득도 시키시며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나라는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심이 되고, 하심 해야 번뇌 망상에 가득 찬 그 마음이 비워진다. 비우고 나야 진정한 공부가 비로소 시작되며 그 비워짐을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우리 스님의 가르침에도 저는 하심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제 변명이 먼저 나오고 나름대로 주변을 배려한다며 했던 행동은, 상대가 주가 아닌 내가 주(主)가 되어 판단한 배려였습니다.

그것은 배려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이렇게 했다’는 상을 세우면서 제 어리석은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를 곁에서 지켜보시고, 저의 은사 스님은 많이 걱정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늦은 나이에 발심출가를 했으면 지성 일념으로 기도하고 열심히 수행을 해도 부족한  시간인데 아만을 버리지 못하고 망상을 일으킵니다. 그 망상에 꺼들려서 스스로 지옥을 만들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 또한 힘들게 함에 대해 걱정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하심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혜인스님의 법문에 하심이란, ”나를 남 아래에 둘 수 있는 마음입니다.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밑에 있겠다는 마음입니다. 아상이 무너지고 하심만 잘 되면 모든 존재가 차츰 부처님으로 보일 수 있게 됩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 저희 치문반이 봄철에 치문에서 배웠던 〈위산대원선사 경책 潙山大圓禪師 警策 〉중에서

소한所恨은 동생상계同生像季하야 거성시요去聖時遙라
불법佛法은 생소生疎하고 인다해태人多懈怠할새
약신관견略伸管見하야 이효후래以曉後來하노니
약불견긍若不蠲矜이면 성난윤환誠難輪逭이니라.

한스러운 바는, 상법이 끝난 시기에 함께 태어나 성인이 가신지 오래되어,
불법은 드물게 드러나고 사람들은 모두 게으르구나.
간략하게 좁은 소견을 펼쳐 뒤에 오는 이들을 깨우치려 하니
만일 자만심을 버리지 않으면 윤회를 벗어나기 참으로 어려우리라.

라는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아서 되뇌고 있습니다. 어느날 문득 제 모습이 저에게 비춰졌습니다.
저의 어리석음이 부끄럽고 창피했으며 저의 그 꼴을 보아 넘겨주시고 일깨워 주려고 무던히 애쓰셨던 은사 스님과 옆에서 저를 다 받아준 사형에게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이곳 강원에 와서 은사스님을 떠오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지곤 했습니다.
이제 출발점에 갓 시작해서 부족한 것도 많지만, 조금씩 제 모습이 보일 때는 수행자의 이 모습, 이 자리에 있음을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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