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오직 갈 뿐_효주스님

최고관리자 | 2014.03.10 12:48 | 조회 2253

오직 갈 뿐

효 주 / 치문반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효주입니다.

여러분은 산행을 좋아하십니까?

저희 절 뒤에는 화엄벌이라는 멋진 능선이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1천명의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였던 곳으로 봄에는 철쭉의 향연이, 가을에는 광활한 억새초원이 등산길의 운치를 더해주는 곳입니다. 지난 여름방학 때 화엄벌을 오르면서 우리 수행의 길도 이 산행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을 오늘 법문의 내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이 길은 직접 한걸음한걸음 가야 하는 길입니다.

한 방을 쓰던 학인 스님과 같이 가자고 했지만 굳이 안 가봐도 익숙한 풍경이니 방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멋진 사진과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도 있는 시대이고 굳이 힘든 산행을 자처하는 것은 번거로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걸음한걸음 산길을 오르면서 그 순간 제가 느끼던 감동은 그순간 그곳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신 길을 우리가 경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직접 그 길을 가지 않으면 남의 보물을 새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연히 책을 통해 불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제가 일찍이 인생에 대해 품었던 고민을 직접 수행을 통해 해답을 얻으셨고 진리를 보신 분이라는 것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수행하여 깨닫기만 하면 무명에서 벗어나 진리를 바로 보고 윤회고를 벗어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수행하기 늦었다는 생각을 떨치고 부처님 가신 길을 따라가겠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단어부터 다시 배우는 입장이 되어 마을에 있던 어느 때보다도 고된 노동과 바쁜 일과를 보내야 했지만, 아름다운 산의 품안에서 덕 높으신 어른스님들의 생활을 옆에서 보고 배우며 한해 한해 자라는 아이처럼 행복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백리길을 갈 때 한걸음을 걸으면 갈 길이 한걸음 줄어들지만 가지 않고 길 가운데 서 있기만 하면 설사 고향소식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한들 집에는 끝내 도착하지 못하리니 어느 쪽을 선택해야겠는가?” 

둘째 정상이라는 나침반을 항상 마음에 두고 끈기 있게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 않은 길일수록 길은 험하고 잃기 쉬우며 힘듭니다. 그러나 올라가기 힘든 순간을 만나도 하산하지 말고 일단은 올라가야합니다. 높은 곳으로 가야 길이 보이고 힘든 순간을 이기고 나면 새 힘이 생기게 됩니다. 

힘들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운문사 대중생활을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넓은 도량을 초를 다투며 뛰어다녀야하는 다이나믹함과 비구니 사관생도의 요람이란 명성답게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일사분란함을 요구하는 행동과 무엇 하나 마음대로 판단할 수 없이 따라야만 하는 인수인계..... 성격상 나서기 싫어하고 일머리가 없는 저에게 백씨 측이라는 이유로 총책임을 맡게 하는 소임도 여간 부담스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곳곳에서 들어오는 상반스님들의 지적은 저를 더 긴장하게 했고, 나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얼굴로 인상파가 되어 도량을 돌아다닐 때 한 상반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효주스님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입니다.” 이 말씀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여기 수행하러 왔는데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처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항상 경계하며 주위의 산을 볼 마음조차 내지 못하는 구나 나는 운문사에 경을 공부하고 대중생활을 익히러 왔다.’

이후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익히고자 했습니다. 가을철 종두소임을 살면서는 도반스님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밧줄에 목숨을 맡기는 산악인들처럼 이 길을 함께 가는 도반스님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환경과 덕 높으신 어른스님들, 끈질긴 애정으로 저희에게 치문을 물들이기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 상반스님들과 가장 가까이서 나의 선지식이 되어주는 도반스님들과 함께 이 순간에 애쓰고 애쓰며 오직 갈 뿐입니다. 법구경 말씀으로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게으른 무리 중에서 부지런하고 잠든 사람 가운데서 깨어있는 현자는
빨리 뛰는 말이 느린 말을 앞지르듯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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