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이뭣고_탄욱스님

최고관리자 | 2014.03.10 12:57 | 조회 2633

이뭣고

탄 욱 / 사집반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금강경 32품>

모든 유위법은 꿈이고 환상이고 물거품이고 그림자이고

이슬 같으며 또한 번갯불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觀)할지어다.

知幻卽離 不作方便 離幻卽覺 亦無漸次

(지환즉리 부작방편 리환즉각 역무점차) <원각경 보현보살장>

환(허깨비)인줄 알면 곧 여읨이라 방편을 짓지 않으며

환(허깨비)을 여의면 그대로 깨달음이라 또한 점차가 없다.

여러 경전의 말씀 중에 항상 염두에 두고 머릿속으로 되뇌이는 게송입니다. 마음에 새기려 세뇌 아닌 세뇌를 시켜보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이 육근을 통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등등의 색, 성, 향, 미, 촉, 법! 이 육경이 너무나 ‘리얼 버라이어티(Real Variety)’한 실제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도무지 환상이고 그림자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으로는 엄연히 깨어나야 하는 꿈이고, ‘톡’하고 터트리면 금방 없어져버리는 물거품이라는 것이지요. 허깨비인줄 알기만 하면 곧 여의고 여의면 그대로 깨달음이라 하셨는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아니 마음으로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오직 이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이니 알 듯도 한데, 실생활에서는 여지없이 모두 무너져 내려 ‘도루묵’입니다. 안다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닌 게지요. 수 없는 생 동안 쌓아 온 두터운 업장! 바로 이 ‘업장’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간절히 깨닫기를 원한다면, 이 업장부터 소멸해야겠지요. 간절한 만큼 맹렬하게, 간단(間斷)없이 수행 정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계의 그릇이 온전해야 선정의 물이 고이고, 선정의 물이 고여야 지혜의 달이 뜬다.”라고 했습니다. 뭔가를 바라는 마음 없이, 준다는 생각조차 없이 보시하고, 온전히 계를 지키는 것은 가장 기본일 것이며, 선정의 물이 고여 지혜의 달이 뜨게 하려면 인욕과 정진이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먼저 인욕! 말이 쉽지, 참으로 어려운 것이 바로 제대로 인욕 하는 것입니다.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진정한 인욕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내는 것! 그것이 참다운 인욕이랍니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인욕 수행을 얼마나 잘 하고 있나요? 평소에는 잘 참는 듯도 하다가 조금만 몸이 피곤해지고 체력이 떨어지면, 단박에 그만 사소한 일에도 ‘버럭’ 화를 내고, 시시비비 분별하며 쉽게 짜증을 부리고 마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금방 돌아서서 바로 후회하고 참회하지만, 늘 아쉬움이 많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연습이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화가 나는 순간 바로 알아차리고 마음을 되돌리며, 더 나아가서는 어떤 경우에도 아예 화가 나지 않는, 그러한 경지에까지 이른다면 참 좋겠지요. 이러한 진심(嗔心)은 ‘내가 옳다’라고 하는 아상(我相)과 아견(我見)을 버리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인데, 참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 색, 식, 명, 수의 오욕락(五欲樂)으로부터 벗어나 탐진치(貪嗔癡)의 삼독을 버리는 것! 그 하나하나가 인욕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방에 앉아서 하는 것만이 정진이 아니라,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일상생활 속에서 인욕하며 수행하는 것, 이 또한 ‘정진’ 아니겠습니까? 승시직입(乘時直入) 때를 타고 곧바로 들어가서, 바쁘고 힘들면 힘든 대로, 아프고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here and right now!’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곧바로 화두를 챙기고 공부하면 된답니다. 일용선(日用禪)! 공부의 때와 장소가 따로 없다는 것이지요.

사소하고 헛된 것들에 끄달려서 마음쓰지 않고 수행에만 매진한다면,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 함께 성불하는 그날이 좀 더 빨리 오지 않을까요? 뭣도 모르고 전에는, 선방에 자리 깔고 앉아, 가만~히 조용~히 좌선하는 것만이 공부며 수행인 줄 알았습니다. ‘노인불수(老人不修)요 파거불행(破車不行)이라’ 늙으면 수행하기 어렵고 망가진 수레는 갈 수 없다는 말에, 게으름 없이 수행하라는 뜻을 제대로 모르고서, 조금 늦은 나이에 출가한 조바심으로 ‘빨~리 깨쳐야지!’하는 욕심만 앞섰던 것이지요. 본격적으로 선방에 앉기 전에 그 기초를 다지는 강원 생활! 부지런히 꾸준하게 일심으로 정진해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은 선정의 물이 고이고, 그 맑은 물에 실상을 제대로 비춰볼 수 있게 되어, 그 속에서 마침내 휘영청 밝은 지혜의 달이 떠오르겠지요.

끝으로, 제가 종종 읽곤 하는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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