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한송이 연꽃이 되어_선문스님

최고관리자 | 2014.03.10 13:16 | 조회 2720

한송이 연꽃이 되어

선 문 / 화엄반

새벽3시, 허상의 옷을 벗은 나무 본연의 빈 가지 끝에 피어난 영롱한 달은 침묵의 대지에 잠깁니다. 허상을 벗은 나의 출가수행자 본연의 모습은 어떠한가. 어간 사이로 보이는 연꽃과 같은 부처님을 바라보며 가사를 수한 제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몇 해전 우연히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책을 보았습니다. 존자님께 있어 중요한 불상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존자님은“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불상입니다”라며 조심스럽게 보이십니다. 그 불상은 제가 예상했던 화려한것아닌, 작고 빛바랜 부처님의 고행상이었습니다. 무언가에 맞은듯 멍해졌고 제 두시선이 그곳에 머무른체 가슴이 먹먹해져옴을 느낌니다. 뼈와 살가죽이 붙어 앙상한 모습이지만 그의 두 눈망울만은 빛이나는듯 경이롭기만 합니다. 부처님의 극단적 고행은 아마도 대원의 발심이 근본이된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간절한 발심은 무엇이었을까?

동진출가자인 저는 부끄럽게도 발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남들처럼 원력과 신심이 사무쳐서도 아닌, 자연스러운 출가였기에 ‘진정한발심’이 무엇인지 늘 화두처럼, 마음한켠에 묵직함을 떨쳐낼수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부처님의 품에서 자라면서 ‘스님처럼 훌륭한 사람이되라’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듣고 컸기에, 학교졸업을 앞둔 질풍노도기 시절, 주위의 기대감이 부담이되어 전, 부정적으로 빗나가기만 했습니다.

또래의 제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세상에서 하고싶은게 많았기에 결국 짐을 꾸려 가출을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노심께선 예기치 못한 사고로 크게 다치시게 되셨고 전 처음으로 노심의 손발이 되어드리며 시봉했습니다. 누구보다도 호랑이처럼 엄하셨고 약한 모습을 보여주신 적 없기에 노심께선 평생 건강하실 줄 알았습니다. 공양을 떠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리며 야위신 노심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못난 전 늘 노심께 받기만 했지 해드린 것 하나 없었고, 나만 힘들다고 도망칠 생각만 했기에 죄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낳아주신 은혜보다 키워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노심만을 믿고 출가하였습니다. 남들은 삭발염의 할때 날아갈듯 좋다는데, 전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가위소리에 툭툭 떨어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제 마음도 따라 툭툭 떨어지는 듯 했습니다. 제가 스님이 되고 가장많이들은말은 “못난이메주 사람됐다”라는 말입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제가봐도 많이 용된것같습니다.

노심께선 늘 “하늘을 덮고도 남는복이 있어야 중이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복이 무엇인지 더 배우라는 뜻에 따라 위탁행자가 된 그 후, 행자복은 도량을 뛰는 체육복이 되었습니다, 매우 예민한 저에게 밤마다 찾아오는 야행성 몽유병증상은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의 공포가 되었습니다. 스님 공부는 또 어찌나 어려운지, 我有一卷經하노니 나에게 경한권이 있으니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라. 하루는 초발심자경문을 배우는 날, 스님께선 환희로운 어조로 “맹구우목 불법난봉이라, 눈먼거북이가 백년에 한번 구멍 난 판자를 만난 것과 같이 불법만나기 어려우니라, 어떠냐 신심나지않느냐?”이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는“아니스님! 그럼 거북이가 목에 끼인 나무는 어떻게 빼요? 거북이가 너무 불쌍해요”저의 말에 뒷목잡고 쓰러지신 스님이셨습니다.

하루가 마냥 철없던 때 제 일생에, 마음을 뒤흔든 일을 만났습니다.

드디어 행자복을 벗고 사미니계를 받는 날. 참회진언을 외우며 호궤합장한 팔뚝위로 타오르는 계의 심원은, 마치 온몸을 태우는 듯 알 수 없는 고통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후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은 며칠간 계속되었고, 그것은 제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고통과 두려움의 시간었습니다.

진정한 발심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준비도 안 된 제자신이 10계를 받기에는 너무도 부담스런 죄책감으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이었습니다. 부처님이 계신다면 제가 진정으로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묻고싶어 기도했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 저는 사미니계를 받은 그 장소에 서있었고, 저 멀리 엄숙한 계단위로 쏟아지는 빛 아래 가사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손을뻗어 가사를 수 합니다. 순간 제옷을 입은듯 너무도 편안하고 환희로 왔습니다 꿈속에서 깬 그 후 고통 속에 방황하던 제 마음이 굳건해져갔고 제가 가야할 길 또한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 발심의 씨앗이 새싹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꿈속의 그곳은 아마도 부처님의 화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계단에 놓여진 가사를 잊지 못합니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수한 그 가사가 이제는 저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발심을 일으키고 정진해야할 수행자의 모습 가운데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좋은 벗을 가까이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강원4년 동안 이 2가지를 모두 이루었습니다. 어른스님을 가까이 모시며 배웠고 또 소중한우리반 38명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만났다면 강원 4년간은 선문동자의 38선지식 구도기의 과정이었습니다. 느리고 느린 선문이 항상 기다려주고 이끌어준 화엄반스님들 감사합니다. 그중에 나의 평생의 애증의관계 선학스님에게도 고맙단 말 전하고 싶습니다. 운문사에서 선문이처럼 갑빠한번빨고 코풍선도 터트려봐야 화엄반 졸업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졸업 후에 우리 다시만나는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 도반아이가”하며 만납시다.

저의 발심의 마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노심께서 늘 말씀하신 ‘하늘을 덮고도 남는 복’을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고, 부처님法배우는 것이 행복합니다. 발심이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갖추어져있는 보리의 씨앗을 어떻게 발할 것 인지 우리 출가수행자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합니다. 처음 발심한 그때가 바로 정각을 이룬 때라는 뜻처럼 매 순간이 발심아닌 때가 없듯이, 출가수행자는 연꽃과 같이 정진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연꽃이 꽃을 피우며 동시에 열매를 맺듯이 말입니다. 저의 지심귀명례 합장한 손이 느슨해질 때마다, 2500년전 세존께서 가사한벌과 발우하나를 지니며 우리들 곁에 다가오셨듯이 저 또한 항상 초발심 하는 마음으로 신념을 가진 부처님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스님이 될 수 있도록 法의스승이되어주신 노심, 은사스님 그리고 저와 인연되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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