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여기가 지평선 - 대교과 도원下

가람지기 | 2018.09.29 20:30 | 조회 219

반갑습니다. 저녁 예불 끝의 이 법석을 준비해주신 대중스님 여러분께 고맙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위해서 달려온 운문사의 가족들은 이렇게 하루하루 수행의 시간을 쌓고 있습니다. 하루 동안의 수행을 위해서 무얼 하였는지 떠올려보면 예불과 발우, 입선과 운력 등일 것입니다. 수행공동체 안에 있는 지금 일상과 수행이 연결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새벽 4. 팔렘방 아시안 게임의 역도선수가 역기를 들어 올리듯, 어렵사리 60kg의 몸을 일으켜 대웅전을 향하는 이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데. 이 길의 끝에 해탈이 놓여있다면 나의 일상이 그 궤도에 놓여있는가 아니면 이탈했는가에 대해서 사유할 때. 저의 경우에는 곧잘 라는 주체적 자아가 있어서 의지적 행동에 의해 수행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뭔가 더 높은 단계에 있어서 정말 고통도 없을 뿐 아니라, 최고의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시시한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듯이 법희선열이라는 맛은 최상의 맛이라는데... 이런 식으로 또 하나의 좋은 것에 대한 욕망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깨달으려면 업장을 녹여야 한다는데... 해묵은 업장을 녹이고자 하루에 광명진언 천 염을 다짐하는 나. 이번 철에는 도량석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자고, 또 철강도 일찌감치 외우자고 다짐하는 나. 이 나라고 생각하는 주체적 자아가 성립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의 틀은 무엇일까요?

 

내가 존재한다, 이 세계가 존재한다고 인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먼저 수용합니다. 이 탁자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시간적으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탁자가 있다고 받아들입니다. 이와 같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시간동안 존재하는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부피를 가지고 공간을 차지하는가의 개념을 토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체적 자아를, 이 세계를 인지할 수 없습니다. 시공간이 개념에 불과하다면 시공간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이 세계안의 모든 것, 주체적인 자아까지도 존재한다는 생각은 허상이 분명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라는 단어 자체가 세는 시간, 계는 공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공간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무지의 속박에 걸리고 맙니다. 가상의 내가 가상의 해탈을 구하고 있는 모습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각자 모월 모일에 태어나고 자라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정자였을 때 난자로 달려가는 법, 내가 지금 수정체인데 이 상태에서 2의 배수로 분열하는 법, 다시 그 상태에서 눈··입 만들어내는 법, 태어나는 법, 태어날 날짜 잡는 법을 우리가 주체적인 자아의 입장에서 마지 푸는 법을 배우듯이 배우고 행동했을까요? ··입이 있기 전의 는 세계를 어떻게 인지했을까요? AI가 있는데, 프로그래밍된 대로 어떤 작업을 오랫동안 연속적, 지속적으로 수행하다보니까 스스로 주체적 자아를 가지고 내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이것은 오류다. AI를 존재하게 하려면 절대적으로 무언가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 사실이 당연하듯이 우리가 주체적 자아와 나머지 개체들을 상정하는 것이 착각이다. 이것은 절대적 근본의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말 누구나 체득하고 싶어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참된 나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몸이나 지나가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모인 기억이 아니라는 것을. 주체적 자아를 희미하게 하기 위한 방법. 첫 번째. 내가 본다. 내가 들었다.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렇게 보인다. 이렇게 들린다. 라고 생각하는 연습입니다. 주체적 능동적이란 단어 자체를 안 좋은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제로 허공이나 바람이 주체적 의지를 가지지 않듯이 우리가 가진 주체적 자아도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가 반듯한 자세로 예불을 모시는 것도 거룩하고 지대방에 누워있는 것도 거룩하다. 반대로 반듯한 자세로 예불 모실 때도 오염되었고 지대방에 누워있어도 오염되었다. 모두 참나이기 때문에. 항상 명심해야합니다. 나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나에 대한 정보, 나의 이름, 나의 성별, 나의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아닌 존재함자체에 집중해 보세요.



모두 근본 자리에서 지금까지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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