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착하게 살자, 무아야 - 치문반 무아스님

가람지기 | 2018.12.07 21:47 | 조회 328

  

안녕하십니까? 단풍으로 물 들었던 호거산이 어느새 붓으로 그려놓은 듯 한 무채색의 계절이 왔습니다, 치문반 무아입니다.

저는 운문도량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느꼈던 저의 진솔한 이야기를 대중스님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저는 먼저 달라이라마 존자의 아침 기도문 중에 있는 글귀를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제가 살아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제가 이 귀한 인생을 얻었으니 오늘도 화도 내지 않고 어려운 일을 인내하겠습니다.

좋은 말을 하고 남을 위해서 착한 일을 하겠습니다.

오늘도 수행하여 제 마음을 닦으면서 저의 모든 것을 이 세상에 베풀겠습니다.

이 귀한 오늘은 그렇게 살겠습니다.”

 

이 글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그 이유는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저는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하고 은사스님으로부터 무아라는 법명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운문사 도량에서 도반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지만 무아는 이해하기에는 넓고 큰 단어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냥 무아라는 법명을 착하게 사는 것으로 그렇게 살다보면 그 안에서 알 수 있는 뜻으로 제 나름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살다보면 그 안에서 무아의 참 뜻을 알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더운 여름철에는 종두소임, 여름 불교학교, 염불대회 등 제게 주어진 소임을 거부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냈습니다.

정신없이 두 철을 살고 나니, 가을철에는 조금 쉬고 싶은 마음에 소임을 맡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한 몸 편하면 그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수고로움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살고자 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그러한 불편한 제 마음의 진동이 어딘가에 울렸던 모양입니다. 바로 중소임을 살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사정이 생긴 도반스님이 정통 소임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웬 일 일까요? 그렇게 기분 좋게 받아들였던 가벼운 마음은 돌연 무겁고 힘든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쏟아지는 인수인계 사항과 지켜야할 규칙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적응이 안 되는 멘트로 인하여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다른 스님들은 잘 따라 가는데 저만 홀로 뒤처진다는 생각에 자신감도 사라져서 점차 작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정통 소임자스님은 저의 실수를 차근차근 낱낱이 알려주었고, 또 반복해서 고쳐주면서 항상 저와 함께 해주었습니다. 상반스님은 시종일관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저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쑥스럽지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제가 한 철을 잘 살 수 있었던 것도 소임자스님 덕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기소침했던 저의 무거운 마음은 점차 가벼워졌으며 조금씩 소임에 적응하면서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청소할 때마다 내 마음을 닦는다는 생각에 열심히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주리반특가가 사형 사제들의 신발을 닦는 일에 몰두하면서 뇌와 입속으로 이렇게 되 뇌이듯이 말입니다.

 

티끌은 탐욕이니 지혜 있는 사람은 탐욕을 버린다. 노여움도 티끌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그것을 없앤다. 어리석음도 티끌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그것도 없앤다.”

티끌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안과 밖을 상징한다. 밖의 티끌과 때는 눈에 보이는 먼지와도 같은 것들이다. 안의 티끌과 때는 마음의 결박이다. 지혜란 이 마음의 결박을 없애는 것이다.”

 

바보로 알려진 주리반특가은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경을 외워도 참된 것을

모르면 무익하고 한 구절이라도 참으로 알면 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하수구 안에 있는 동판을 닦는 일마저도 그 동판이 정말 노랗게 반짝 거리면 내 마음도 반짝거리는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물론 육체적 노동이 많은 일이다보니 저녁에는 골반과 다리가 너무 아파 어둠속에서

파스를 붙이고 잠이 들었고 아침이면 손발이 너무 부어서 새벽 예불시간에는 합장하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이 아픈 몸처럼 수고롭지 않았습니다.

도반스님들은 저에게 정통 살더니 얼굴에서 나날이 빛이 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이치일까요? 아마 저의 법명인 無我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치문의 영가답서必能了陰無我일 것이니 無我인댄 住人間이리요, ‘반드시 능히 오온이 무아임을 깨닫는다면 가 없는데 누가 인간 세상에 머물겠습니까?’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정통소임을 살면서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훤하고 밝았던 이치가 바로 나라는 我相을 조금씩 걷어내고 그 걷어낸 자리에 다른 무엇인가가 채워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나와 연결된 다른 이들의 행복으로 채워졌던 것입니다.

 

아직도 이상합니다. 나의 자리에 가 줄어들고 다른 이의 행복이 많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오히려 내가 빛나고 행복해진다는 것이 말입니다. 아직은 이러한 신기한 사실을 100%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정통소임을 살면서 조금이나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부처님 법을 만났고 운문사 도량에서 소중한 25명의 도반들과 함께 수행한다는 것이 너무너무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고맙습니다. 덕분에 무아라는 법명으로 가는 길이 탄탄대로일 것입니다. 수행하는 여정에서 맺어진 모든 인연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무아는 오늘도 착하게 살려고 마음을 내고 또 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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