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초심 - 사집반 해성스님

가람지기 | 2019.07.06 10:44 | 조회 115

                 

    


  안녕하십니까? “초심이라는 제목으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집반 해성입니다.

초심불망(初心不忘) 마부작침(磨斧作針) - 초심을 잊지 말고 쇠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힘들 때 포기 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면 끝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큰 열정과 자신감으로 시작할지라도 어떤 일이든 어려움을 겪거나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은 초심을 뒤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법문을 할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불교가 무엇인지, 스님은 어떻게 되는지, 절은 어떤 곳인지, 부처님은 어떤 분인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속생활에 파묻혀 그럭저럭 그냥저냥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살아온 시간이였습니다. 삶에 흥미도 없고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아는 보살님이 지금의 은사스님 절에 요양 차 계셨기에 만나 뵈러 가게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암자였습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고 법당 앞에 서는데 마음이 두근두근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순간 내가 미쳤구나! 실없이 웃고 있네.” 하고 놀랐습니다. 그 와중에 스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차담도 하고 답답한 마음도 털어놓았습니다. 몇 마디 나누지는 않았지만 편안하고 고요했습니다. 그리고는 화엄경 약찬게를 주시면서 하루에 108 독을 하라고 하셨고 더불어 계수기도 같이 던져주셨습니다.

   그렇게 은사 스님과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똑같은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약찬게도 하고 하루에 108번은 힘들지만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하자라는 각오로 했습니다. 입에 붙으니 나름 랩처럼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신심인지는 잘 모르지만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강해진다는 느낌, 누군가가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도 받아보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그렇게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은사 스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저를 보시고는 짐은 다 가지고 왔제.” 라고 하셨습니다. “!! 뭐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냥 왔을 뿐인데 머리 깎으려고 온 줄 알고 계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절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리는 길을 저녁으로 새벽으로 다녔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피곤하지도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신은 맑았고 홀가분한 마음이였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출퇴근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런 기분을, 느낌을, 마음을 더 알고 싶어 출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사 스님께서는 중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늘을 덮고도 복이 남아야 스님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저도 전생에 복이라는 것을 아주 조금은 지었나보다 생각했고 도대체 전생에 나는 뭘 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선이라는 공부를 하다 보면 전생을 볼 수도 있다는 말에 혹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볼 수 있을까? 무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하니 캄캄했습니다. 전혀 아는 것 없이 이 길을 가도 되는지 아니면 다시 세속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공부라면 학교 다닐 때 담을 쌓고 살아온 저이기에 난감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은사 스님께서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착하게 바르게 잘 사는 것이 중노릇 잘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게 된 곳이 운문사입니다.

처음 운문사에 들어올 때는 일 년만 잘 견디자 마음먹었습니다. 사집이 되었을 때는 어떤 소임을 맡더라도 피하지 말고 도망치지도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저는 항상 자신감 없는 제 모습이 싫었는데 이것 또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해결하고 거쳐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어지는 소임들을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 나와 너 이 모든 것은 따로가 아닌데 자꾸 우리들이 분별을 짓고 둘로 나누려고 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모르면 번뇌가 생기고 알면 지혜가 생깁니다. 하루에 몇 번이고 돌아보고 알아차리고 다짐합니다.

   난 뭘까? 왜 출가를 했지? 잘 살고 있는 걸까? 잘 하는 것은 눈곱만큼도 없는데 도반 스님들이 부럽고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잘 하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고 막상 하려고 하면 벽에 막힌 것처럼 막막합니다.

   이럴 때 주위를 둘러봅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도반이 있고 상반 스님들이 있고 어른 스님들이 계셨습니다. 말보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저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수행이란 기본적으로 마음이 바뀌어지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꾸 돌아보고 돌아보다 보니 나쁜 마음에서 좋은 마음으로 질이 낮은 마음에서 질이 높은 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른 마음, 좋은 마음, 긍정적인 마음을 기르고 사용하고 향상 시켜나가는 것을 수행한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수행은 마음의 일이지 몸의 일, 대상의 일이 아닙니다. 수행하는 마음, 알아차리는 마음, 일하는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 하며, 또한 선한 마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순간순간 다짐하고 각오하고 처음 마음을 돌이켜봅니다.

   이제 2살이 된 지금 앞으로 더 잘 살자, 더 많이 살피고, 배우고, 익히고, 배려하면서 나 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자. 이렇게 다짐하며 매일매일 게으르고 나태한 제 자신과 싸우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남 탓을 하지 말고 그 순간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초심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대중 스님들의 생활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초심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출가수행자입니다. 그러기에 매 순간 누가 먼저라기보다 내가 먼저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일타스님의 초발심자경문에 인유고금(人有古今)이언정 법무하이(法無遐邇) 하며 인유우지(人有愚智)언정 도무성쇠(道無成衰)하나니 수재불시(雖在佛時)나 불순불교즉하익(不順佛敎則何益)이며 종치말세(縱値末世)나 봉행불교즉하상(奉行佛敎則何傷)이리요.

사람에게는 옛날과 지금이 있지만, 법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사람에게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있지만, 도에는 성하고 쇠함이 없느니라. 비록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으며, 아무리 말세를 만났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한다면 무엇이 해로우랴.

   시대를 탓하는 것은 정법이 아니며 사람에게는 옛 사람과 지금 사람이 있지만, 법에는 먼 법과 가까운 법이 없습니다. 사람 중에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과 인연이 주어진 이때 힘써 닦으면, 닦기 어려운 행이라도 닦아 익힌 힘이 있기 때문에 차츰 어렵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을 비롯하여 옛날 도를 이룬 분들 중, 처음에 범부 아니었던 이가 어디 있었습니까?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받들어 행하면 좋은 날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아니, 수행하는 그날그날이 모두 좋은 날이고 초심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어둡고 밝음을 살펴서 적합한 수행법을 택해서 마음자리를 밝혀갈 뿐, 비겁하거나 나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대중 스님 여러분!

우리의 처음 마음으로 조금은 성숙한 시작을 다시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더 이상 시간이 가기 전에 말입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잊지 않고 중간에 어려움이 있어도 꾸준히 노력해 결국 뜻을 이루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진리를 실천해 나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희망찬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위대한 초심을 결코 잊지 않는 수행자가 되길 발원합니다. 더불어 이곳 운문사에서의 소중한 인연과 시간 대중 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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