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공부하다 죽어라 - 치문반 현오

가람지기 | 2020.08.01 10:13 | 조회 956

안녕하십니까?

저는 공부하다 죽어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치문반 현오입니다.

 

청풍료 대방에서 아침발우공양을 시작하려고 할 때입니다.

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갑자기 어수선해졌습니다.

새도 당황하였는지 이리저리 날아 다녔습니다.

빛을 좇아 날아올랐지만 이내 천장에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한참을 왔다 갔다 하더니 망창 앞에 잠깐 앉아서 바람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조금만 아래로 내려오면 문이 열려 있는데 새는 위로만 날아오릅니다.

형광등 불빛에 속아 등에 부딪히는 새를 보고 어른스님께서 불을 꺼 주셨습니다.

마음속으로 새에게 말했습니다.

잠시 쉬면서 바람의 흐름을 느껴보렴. 어디서 들어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진짜 밝음을 따라가 보렴.’

빛을 좇아 날아올랐지만 가짜 불빛이었고 망창에 앉아 바람을 느껴보지만 뚫고 나갈 수는 없습니다. 어른스님께서 불을 꺼 주셨지만 끝내는 천장에 부딪혀 기절하여 청풍료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바리때 천수에 출가본분을 잊고 업식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는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 새와 내가 다른 것이 뭔가?

지대방에 오니 도반스님이 하는 말 역시 쟤는 새야!”

!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육도 중에서 인간만이 깨달음을 이루어 육도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데 인간 몸을 받았습니다.

열반경盲龜遇木 이야기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눈먼 거북이 나무를 만나다입니다.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오래 오래 산 눈먼 거북이 바다 가운데 있어 백년 마다 한번 씩 물 위에 나옵니다. 그 물 위에는 구멍 하나만 뚫린 나무가 물결을 따라 떠다니는데 마침 눈먼 거북이가 물위에 올라 올 때에 그 나무가 거북의 머리 위로 오게 되어 그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나무 위에 올라앉는, 매우 만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 세상에 나거나 불법을 만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인간을 둘라밤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매우 얻기 힘든 드문 기회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 몸도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무상의 현상이 더욱 빠른 속도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치문 위산대원선사 경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無常殺鬼念念不停하니 命不可延이며 時不可待

무상한 시간의 살귀는 한 찰나도 멈추지 않으니

목숨은 늘 일 수 없으며 시간은 막을 수 없다.

 

치문 위산대원선사 경책

一失人身이면 萬劫不復이니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이 지나도 회복하지 못하리.

 

동산양개화상 사친서에 나오는 가르침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三界猶如汲井輪 百千萬劫歷微塵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삼계는 마치 우물물을 긷는 도르래와 같으니

백천만겁이 작은 먼지만한 숫자만큼 지나갔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어느 생에 다시 제도하리

 

금생에 사람 몸 받았지만 저 새와 다름없이 무명에 가려 업식에 끄달리며 속진에 허우적대다가 발심출가를 하여 운문사강원 치문반이 되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출가를 하여서인지 원래 부족한 사람이여서인지 낯선 환경과 대중 속에서 습의가 잘 안되어 마음이 다치고 힘들어할 때 도반스님이 다독여주면서 말했습니다.

스님, 다 내려놓고 왜 출가를 했는지 만 생각하십시오.” 잊고 있었습니다.

저의 출가 동기는 공부하다 죽어라는 혜암 큰스님과

살아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해 깨달음을 이루라

붓다의 마지막 가르침을 따르고자 함입니다.

 

운문사강원은 정말 대단한 수행처 입니다.

저의 손짓 발끝 말 한마디에도 어긋남이 있으면 경책을 해 주십니다

큰 부전스님으로 나투어 以爲說法 해주시고 입승스님으로 나투어 以爲說法 해주시고

상반스님 도반스님으로 나투어 以爲說法 해주십니다.

전부 제게는 너무나 감사한 공부 인 것입니다.

결국 佛道란 신발 하나 반듯하게 벗고, 주의 깊게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내게 네게, 정성스레 마음과 몸을 다 쏟는 일이다라는 자 회주스님의 가르침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을것입니다. 또한 회주스님께서는

원은 종자와 같기 때문에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는 것처럼 원을 세우면 반드시 이뤄집니다.

누구든지 원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수행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사는 것이 수행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곧 수행처다. 卽事而眞 매사에 진실하게 살라. 일에 나아가 진실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이 공부를 놓지 않겠다는 원력을 세웠습니다. 그 원력을 스스로 되새기면서 회주스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살도록 힘써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말을 들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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