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강원의 나의 생력처 - 사집반 성안

가람지기 | 2020.10.18 18:15 | 조회 788

여러분, 강원 생활 잘 즐기고 계십니까?

저의 사형들이 말합니다. “아유~ 학인 하나 키우기 정말 힘드네~~!”

출가를 해서 이 운문사에 있는 현재까지도 무수한 인연들이 저를 키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인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은나갈까?”잠깐 나가서 쉬다 와도 되지 않을까?” 

이럴 때가 있습니다. 나가서 가고 싶은 곳도 딱히 생각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저는 사실 강원에 오는 것을 결정을 하기 전, 미리부터 기초선원에 가겠다고 주변에 말했는데

노스님께서 방으로 부르셨습니다. “강원에 가서 꼭 화엄경을 봐야한다.”

카리스마에 눌려 ~” 하고 나왔습니다.

~ 근데 생각해보니 굴복할 수가 없어요. 정성스럽게 7~8장의 편지를 써서 기초선원 가겠다고 다시 졸랐습니다

다시 부르십니다. 왜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작아지는가. .”

그렇게 실갱이를 몇 번 하고도 안 되겠어서 좀 더 조리 있고 강력하게 말씀드리자! 찾아가서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된다~!!!!!!”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십니다

그 엉겁결에 눈물이 왈칵~ 눈물 콧물 울며불며~조리있게는 무슨~ 사탕 안 준다고 떼쓰는 어린 애처럼 주저앉아서는 흐어어엉엉엉. 저는..엉엉엉~~~ 기초 선원에 가고 싶엉엉엉 으어아앙~~~~” 이 때가 생각 나면 아직도 자다가도 부끄러워 이불 킥을 하게 됩니다.

그 사자같이 위풍당당하신 노스님께서 당황해 하시면서 

니가 그러면 내가 더 말을 못하겠잖느냐그래 가라. 대신 내가 죽을 때까지 널 지켜볼 것이다. 달리 가면 안 된다. 꼭 참선에 매진해야한다.”라는 약속을 하고 기초 선원 갈 짐을 신나게 바리바리 챙기는데 하늘을 날 것 같았습니다.

 

그 즈음 한 사형이 책 몇 권을 방에 툭~ 밀어 넣어요. 저녁 예불 마치자마자 책을 펴서는 그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이틀 뒤, 노스님 방에 찾아갑니다. “노스님~! 저 강원 가겠습니다.”

운문사 입학 면접 채 열흘이 안 남았을 때 일이었습니다.

 

그 때 저의 진로를 바꾼 몇 구절들을 기도문을 읽는 마냥 한번씩 들춰봅니다. 시간상 극 일부만 읽어드리면,

수행자들은 자기를 단속할 줄 알아야한다. 자기 혼자 있을 때보다 두 사람 이상 있으면 서로가 거울인 것이다

그것을 사용할 줄 알면 서로의 결점을 볼 때 거울을 비춰보듯이 자기의 몸에 그와 비슷한 결점이 있는지 비춰볼 수 있다.

진정한 입도는 관념을 바꾸고 아집을 없애는 것이다

아집이 가득한 사람은 부처님 보살님 이라도 그를 어찌할 방도가 없으며 소통할 수 없다. 아집은 물이 가득한 컵과 같아 관세음보살의 감로수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왜 한평생 혼자 있으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가?

청정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더 큰 원인은 다른 이들의 각종 습성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습성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규율에 적응할 줄 알아야한다. 일단 규율에 적응하면 규율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게 된다. 초월하지 못했을 때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괴로운 것이다.

진정한 정력定力은 번뇌가운데서 닦아야 한다. 환경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정력은 정력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경계가 없을 때의 무심은 진정한 이 아니다. 반드시 경계을 마주하고도 무심해야만 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온실 속의 어린 새싹은 드넑은 벌판의 광풍 폭우와 폭염과 엄한을 전혀 이겨내지 못하는 도리와 마찬가지로 온실 속의 수행자도 단지 잠시적인 것으로 일정 수준의 도를 이룰지는 몰라도 부처는 이룰 수 없다.

그렇게 이 망상꾼은 힘을 얻었습니다.


>> , 온 대중 스님을 거울삼아 저를 비춰봅니다. 아집을 없애자 열심히 합장 저두를 하며 길을 걷고. 걱정을 들으면 잘못했습니다.” 참회를 하고, 내 맘에 안 드는 여러 모습을 보며 여전히 성질이 불뚝불뚝 올라오긴 하지만 그래도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이해해 봅니다. 규율에 적응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아직 저에겐 규율이 존재합니다. 그렇게 시시각각 번뇌를 마주하며 그래도 전보다는 광풍, 폭우, 폭염, 엄한이 조금 견딜만 해졌습니다.

 

두 번 째 힘은 아직 입지 못하는 새 누비옷입니다.

치문 반 일 때, 저의 노스님께서 방으로 부르십니다. 제가 강원에 있는 사이 집에 있던 저의 옷 치수를 재서 누비옷을 지어 놓으셨더라고요. 잘 맞는지 입어보라시더니 잘 싸서 보관하라십니다. 그리고는 이건 내 시자 살 때는 입지 말고 나중에 선방에 가서 입어야 된다~” 하셨는데, 계산을 해봅니다.

강원 4년 지나서 사중 소임을 한 1년 살고, 노스님 시자를 또 1년 살면? 은사스님이 또 소임을? ? 소임살고 시자 소임을 연이어 사나? 어떤 소임을 언제까지 사는건가56……. 하아..7년도 더 족히 뒤에 입어야된다는건가???? 세상에.!!!!!!!

망상으로 뒤숭숭한 어느 날이면 꼭 머리 위에 그 누비옷도 둥둥 떠서는 절 따라다닙니다.

생각하자면 그래 너는 잘 지낼것이야~” 하는 한 편의 노스님의 애정이 담겨있을 거란 부담과 함께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강원 4년이 뭡니까. 10년은 꼼짝마라 일 것 같지만 노스님 은사스님 사형들을 진~심 사랑하므로 힘을 얻습니다.

 

제가 너 댓 살 정도 일 때 외할머니께서 기도하다 죽겠다하고 소유하고 계셨던 시골 암자에 내려가셨습니다. 새벽예불하고, 혼자 밭 메고, 심고, 사시 마지 올리고, 도량 쓸고 다듬고 1시에 법당가고, 재봉틀 돌리고, 장작 패고, 저녁 예불, 청소, 저녁 8시 또 법당……

제가 머리를 깎고야 체감된, 어느 지독한 독살이 스님 저리 가라인 외할미의 고독한 암자생활 3~40 년이 나는 노보살 못따라가겠다하고 게으름을 멈추게 됩니다.

저 고등학교 때 노보살이 하시는 말씀이 “‘난 왜 이러고 살고 있나그랬었는데 말이야. 언젠가 사시 마지를 올리고 내려와서 거울 앞에 어쩌다 섰는데, 거울 속에 중이 서있어. 비구 스님이 승복을 잘 차려입고? 한참을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아.파계를 했어. 인물도 훨친하니 공부도 좀 잘하고 그랬던 거 같은데 관둬버렸네. 이생이 예전에 나한테 얼키고 설킨 게 모조리 다 따라온거라~ 파계한 죄가 얼~마나 큰가~ 분명히 다 따라와 업을 받는다. 어느 순간이든 간에 잘 살아야된다~?!”

혹시 그 때 제가 출가할지 아셨을까요? 어쨌든 사바세계 생고생 하지 않으려면 기왕지사 깎은 머리, 할미보살 말씀 마냥 계를 잘 지키자~” 다짐하며 힘을 냅니다.

 

네 번째 힘. 저는 친가가 4대 째 천주교 골수분자 집안입니다.

중학교 때, “저는 수녀님이 되어서 꼭 주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하던 게 접니다. 울 외가 노보살의 표현대로라면 어릴 때 예수쟁이던 우리 똥강아지’. 그 애가 출가한다고 선언했을 때, 그리고 빡빡이가 되어 나타난 딸을 바라보던 세상 다 잃은 표정의 아버지 처사님. 티격태격 싸움질도 하고 술잔도 함께 기울이던 누나가 세상 잘난 줄 착각하던 남동생 처사, “출가를 아무나하냐~”며 출가한다고 가방메고 떠나던 날 아침까지도 누가 좋은 선 자리를 몇 군데 소개했다며 선만 보고 가라던 어머니 보살도, 출가한 고모방에서 많은 아이템을 득템해가며 너~무 기뻐하던 어린 조카, 여러 일반인 친구, 사회의 주변인들도 그래도 제가 머리를 깎고 부터는 삼배를 하고 존댓말을 하며, 큰스님이 뭔지도 모르면서 스님~ 꼭 큰 스님 되셔요~” 하고 부르는 지금 마당에, 나가도 갈 곳이 없는 이것이 저의 힘입니다.

제 발로 찾아들어 왔으니 이 슈퍼 울트라 자존심에~ 중간에 옆길로 어떻게 샐 수도 없고, 게다가 선방에서 공부할 거 아니면 진퇴양난 사면초갑니다.

이미 선방에서 입을 옷도 준비 되어있고, 앉다가 장애가 오거나 물음이 있으면 당장에 연락드릴 인가 받은 어른 스님들도 계시고, 온사방천지에 깔린 선지식들이 저를 끌어주는데도 불구하고 공부를 못하면 이건 무간지옥행입니다.

사실 이런 지옥행이란 걱정 조차도 어른 스님들께서는 그 망상질 할 찰나에 공부나 해라~화두 어디갔나하고 호통을 하십니다만, 공부는 저 하늘 어딘가에 걸어놓고 이리 망상꾼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평생 독살이 스님처럼 지낸 외할머니보살, 여든 중반 넘어까지도 선방에 앉으셨던 노스님, 아직도 성성한 수좌이신 은사스님, 처절한 이 분들 발꿈치도 못 따라갈 것 같습니다만, 그래 나는 여기 어떻게 왜 와있는가? 철저히 내가 선택했고 울 노보살 말마따나 내가 다~ 끌고 들어온 인연으로 내가 이 세계를 조립해 놨으면서 탈출구를 못 찾으면 다 제 탓입니다.

어느 날 인가 휴가 타령하던 저에게 어른스님께서 공부만 (참선만) 열심히 해봐라. 너의 일평생이 휴가다.”

짧은 그 한마디에 딱! 심장이 부풀어 올랐었습니다.

, 전 영원한 휴가로 얻으려고 강원으로 왔습니다. 참선할 힘을 얻으려고요.

 

대중스님들께서는 어떠한 발원들로 이곳으로 왔고 앞으로 무엇을 하실 겁니까?

어떤 스님은 나는 내가 오고 싶어서 여기 온 게 아니고 은사스님이 가라고 해서~ 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조차 본인의 출가라는 선택에서 파생되었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사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고집을 피우지 못한 것은 아직 특별히 세운 목표가 없거나 그렇게까지 간절하진 않은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를 무림의 고수로 만들어주고 계신 운문사의 대중 스님 여러분도 영원한 휴가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벌써 휴가를 즐기고 계십니까?

무상심심 미묘법 백천만겁 난조우 아금문견 득수지 원해여래 진실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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