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자애경-사교반 혜주스님

가람지기 | 2021.01.02 08:08 | 조회 81

자애경

혜주/사교과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애경>에 대한 법문을 하게 된 사교반 혜주입니다. 제 법문의 주된 내용은 부처님께서 <자애경>을 설하신 배경에 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 시대부터 끊임없이 대물림해 오는 장로들의 구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당시 어떤 비구 대중 오백 명이 부처님께 각자 기질에 맞는 특수한 명상기법을 지시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우기의 넉 달 동안 안거하며 명상에 전념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들어갔습니다.

 

거처를 찾던 비구들은 문득 히말라야 산록에서 아름다운 작은 언덕을 발견했습니다. 부근에는 띄엄띄엄 마을이 있어 탁발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그들을 보자 대단히 반겼고, 신심 깊은 마을 사람들은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린 후, “부디 이곳에 계속 머물러준다면, 각자 오두막을 한 채씩 지어드려 거목의 묵은 가지 아래에서 밤낮 명상에 몰두할 수 있게 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비구들이 이를 받아들이자 신도들은 조그만 오두막 여러 채를 짓고, 그 안에 나무 침대와 의자, 그리고 마실 물과 씻을 물을 담는 항아리까지 빈틈없이 마련해 주었습니다.

비구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자신의 오두막을 정하고, 명상하기에 알맞은 나무 그늘을 고르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나무에는 저마다 목신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목신들은 정진하는 비구를 존경하여 기꺼이 온 가족이 자신들의 거처를 비켜 주었습니다.

 

애초에 목신들은 비구들이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 묵어가리라 생각하고 기꺼이 불편을 감수할 생각이었는데, 여러 날이 가도 나무 아래 자리를 차지한 비구들이 움직이려 하지 않자, 도대체 이들이 언제쯤에나 떠날지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빼앗긴 목신들은 마침내 저희끼리 의논한 끝에, 무시무시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끔찍한 소리를 내거나 나쁜 냄새를 나게 해서 수행자들을 쫓아내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들이 무서운 모습으로 괴롭히자 수행자들은 더 이상 명상주제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비구들은 신도들에게는 알릴 사이도 없이 당장 그곳을 떠나 부처님께 찾아갔습니다. 끔찍한 체험을 말씀드린 뒤 부처님께 다른 곳을 수행 장소로 정해 달라 간청했습니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인도 전역을 훑어 보셨지만, 그들이 해탈을 이룰만한 장소는 그곳밖에 없음을 아시고는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라. 그곳에서 정진해야만 마음속의 때를 지울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목신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거든 이 경을 외우고 닦아라. 이는 명상의 주제일 뿐 아니라 호신주도 되느니라.” 그러고서 세존께서는 자애경을 읊으셨는데, 비구들도 세존 앞에서 따라 외운 다음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비구들이 <자애경>을 암송하며 그 깊은 의미를 음미하고 명상하면서 숲속 거처에 다가가자, 마음 가득 따뜻한 호의로 가득 찬 목신들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깊은 공경심으로 비구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의 발우를 받아든 목신들은 방으로 안내한 뒤 물과 음식을 대접하고서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이제부터 조금치의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나무 아래에 앉아 명상수행에 전념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목신들은 우기 석 달 동안 여러 모로 비구들을 돌보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도 소음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습니다. 우기가 끝났을 때, 완벽한 고요를 누린 덕분에 모든 비구들은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부처님께서는 <자애경>을 설하신 것입니다.

 

저는 올 가을에 보리수 수목원에서, 나무 옆에 앉아 능엄주를 외우며 명상을 했습니다. 나무 나무마다 앉을 수 있도록 금강좌를 만들어 주신 회주스님께 감사했으며, 또 이 이야기를 알고부터는 부처님과 목신들에게도 감사하며 자비에 대한 명상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경전을 수지독송하고, 앉아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 그 어떤 공덕보다 수승하다고 하셨고, <능엄경>에서는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지혜와 자비를 개발하기 위해서 선정수행을 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수행자라 아직 수행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쁜 습관도 있고 도반들과의 관계에서도 경계에 부딪히면 마음이 일어나고 분별하기 일쑤입니다. 마음이 일어날 때, 고요히 앉아 숨을 바라보고 모두가 탐진치 번뇌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하고 발원하면서 자비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수행하다 보면, 일심이 청정해지고 다심이 청정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자애경>을 독송하고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자애경

 

자애경의 위력으로 야차들은 무서운 형상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애경을 암송하며 실천하는 이는 편히 잠들고 악몽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완전한 평정 상태를 언뜻 맛보고서 더욱더 향상을 이루고자 애쓰는 사람은 계정혜를 닦으며, 유능하고, 정직하며, 온유하고 거만하지 않습니다.

만족할 줄 알아 공양하기 쉬우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감관은 고요하고 사려 깊으며, 무례하고 거칠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현자들에게 비난받을 어떤 허물도 짓지 않으며, 그런 다음 모든 존재의 몸과 마음이 위험 없이 행복하기를! 이라는 생각을 기릅니다.

살아있는 생명이면 그 어떤 것이든,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길든 크든 아니면 중간치든 또는 짧든, 미세하든 거대하든.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든 또 멀리 살든 가까이 살든, 태어났든 태어나려 하고 있든, 모든 중생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서로 속이거나 헐뜯거나 무시하지 않으며, 원한과 증오로 그 누구도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뿐인 자식을 목숨 바쳐 보호하듯 모든 존재를 향한 일체 포용의 생각을 품습니다.

전 우주를, 그 높은 곳, 그 깊은 곳, 그 넓은 곳 끝까지 모두를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키우며 무한한 자애를 펼칩니다.

서거나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깨어 있는 한, 이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이 거룩한 경지라고 붓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릇된 생각에 매이지 않고 계행과 구경의 지견을 갖추었으며 모든 감관적 욕망을 이겨냈기에 그는 다시금 모태에 들지 않습니다.

 

법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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