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한걸음 한걸음-화엄반 선일스님

가람지기 | 2021.10.15 19:33 | 조회 579

한걸음 한걸음

화엄반 선일

 

 

안녕하십니까. <한걸음 한걸음>으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화엄반 선일입니다.

식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더운 여름이 흘러 제법 선선한 바람이 휘감는 가을이 되었고

멈추어 흐르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이 흘러 저는 어느덧 화엄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차례법문의 날이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만족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노예의 삶과 같고

인생이라는 것은 완전하지 않은 무상한 것이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부귀영화도, 젊음도, 감각적인 욕망도

늘 함께 할 수 있는 행복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불법을 만나며 그동안 느껴왔던 원인 모를 내면의 외로움과 불안,

괴로움의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나의 인생을 위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완전한 행복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부처님과 같이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보고자 출가를 결심했으나

초발심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출가 후 제 자신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은

감각적 욕망이 제가 알고 있는 행복의 전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행복은 세속에서의 행복이 전부였습니다.

위없는 깨달음이 무엇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스님들께서 수행자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해 말씀하시고,

다음 생에 태어나도 수행자로 공부할거라고 말씀하시는

그 마음을 전혀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스님으로서의 발심이 되지 않은 저의 모습들이 돌연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왜 출가자로서 자격이 부족할까.

나는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왜 절에서 살고 있는 스님으로서의 모습보다 밖에서 살았던 모습이

더 행복했었다고 기억하는 것일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은사스님께서는 가랑이 찢어지게 한 번에 빨리 걸으려고 하지 말고

하루에 한걸음씩 걸어가면 된다.

10년은 나무에 뿌리가 내리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싹을 틔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저만의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예경하고,

대중스님들의 위성도업을 발원하며 공양 짓고,

하기 싫은 일과기도를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글들을 보며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걷겠다고 막연하게 발원하며

저에게 주어진 하루를 제 깜냥 것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기도가 아닌 스스로 기도를 하게 되었고

기도를 하면 때 묻은 마음이 청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지은 저의 불선업을 참회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복덕이 갖추어져야 수행을 하고 지혜로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자연스럽게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겠다고 발원하게 되었습니다.

 

지혜와 복덕을 얻기 위해서는 선정을 닦아야한다고 배우고 나니

계율은 자유를 속박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나

계율을 지키고자 하는 청정한 마음이 진흙에서도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고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십이장경에서는

삼악도를 떠나서 사람 몸 받기가 어렵고

사람 몸을 받는 중에도 남자 되기가 어렵고

비록 남자가 되었을지라도 육근을 완비하기가 어렵고

육근이 완비 하였을지라도 좋은 국토에 나기가 어렵고

좋은 국토에 났을지라도 부처님 세상을 만나기가 어렵고

부처님 세상을 만났을지라도 직접 부처님 회상에 들어오기가 어렵고

부처님 회상에 들어왔을지라도 신심 내기가 어렵고

신심을 내었을지라도 보리심을 발하기가 어렵고

보리심을 발하였을지라도 무상대도의 성품을 보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쉽게 마음만 먹으면 뚝딱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에는 원인과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선한 마음에 물을 줘야만 선한마음이 자랄 수 있습니다.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4아승지겁 10만대겁이라고 하는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동안

끊임없는 공덕행의 실천으로 정등각자가 되셨습니다.

 

이 누추한 저의 살림살이를 많은 대중스님들 앞에 내 놓는 이유는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부처님 말씀처럼 닦아나가기 위해 노력만 한다면

누구든지 신심을 발하고 보리심을 발하고 무상대도의 성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화엄경에서는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원래 차별이 없다

누구든지 할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설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중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부처님도 중생에서 시작하셨습니다.

중생도 또한 부처의 성품을 한 번도 잃은 적 없이 항상 함께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수행에 적합한 사람은 없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길을 포기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나아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밝고, 청정한 마음과 만날 수 있길 발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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