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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안녕하세요, 가람지기입니다.

가람지기 | 2009.03.13 13:43 | 조회 2191

권혁민 불자님, 안녕하세요. 가람지기입니다.

네, 불교는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불교의 지옥은 해탈의 경지에 배대되는 일종의 이미지 혹은 세계관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해탈의 경지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이 없어진 자리이며, 그 자리의 인간은 어떤 도덕이나 철학적 잣대를 가져와서 보아도 완벽한 인간성을 갖춘 사람이므로 그 행위에 잘못이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그렇게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철학적으로 결점이 없는 인간상을 추구하며, 인간 내면의 평온함을 바탕으로 세상의 평화까지도 추구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의 지옥은 그러한 완벽성에 배대되는 이미지, 혹은 세계관이라고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실때면 항상 듣는이의 수준에 맞춰서 이런저런 비유를 하셨는데요,

좋은 것만 이야기 해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근기의 중생을 위해 지옥이라는 개념을 설명하신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부처'라고 하는 깨달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못알아듣는다면,

'지옥'이라고 하는 괴로움을 받는 공간으로 갈 수 없지 않겠는냐는 설명을 하신 것이겠지요.

그것이 오늘날에 이른 것인데....

정말로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물으시면 대답할 바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는 밀레니엄, 첨단을 걷고 있으며,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은 믿으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극락세계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거야."

"지옥의 고통이 이런 것일까?"

똑같은 공간, 똑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누군가는 지금 이곳을 극락이라 칭하며 행복을 누리고 있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지옥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면서도 순간순간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의 과정이란 것이 모두 인간에게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변화하는 양상을 바로 볼 줄 알고, 그 변화와 고통 속에 진정 '나'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가를 탐구하여 끝끝내 나와 너를 모두 여읜 지점을 찾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 처음으로 설법하신 사성제의 이치입니다.

지옥이나 극락이 과연 실재하는가에 대한 궁금증 보다는

내가 지금 이 순간을 극락에서 살고 있는가, 지옥에서 살고 있는가를 살펴 아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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