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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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이랑 | 2008.03.27 16:17 | 조회 2246

생명의 강을 모시는사람들의 100일 도보 순례 44일째 일정에 함께 하기로 하고 창녕 남지의 낙동강에 갈 때는 다소 낭만적인 기분이었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로 시작하는 이호우의 시조 <낙동강>과

박목월의 간단명료한 시 <나그네> 즉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저녁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를 신경림 시집 <새재> 간지에 적어 갔다.

그리고 순례 전날인 3월 25일 밤에 운영진으로부터 일정을 듣고는 더욱 들떴다.
44일째 일정이 낙동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인 개비리길을 걷는다는 것이었다.


(도보순례 44일째 걸은 길이 강가의 녹색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개비리길이란 영아지와 알개실 사이의 산길인데 이미 도로로 표현되어 있다. 올해 새로 산 지도인데 너무 최신이다. 남강과 낙동강이 합수되는 지점은 합강정 바로 왼편에 있다.)

그러나 그날 밤 지도를 들여다 보면서 마음이 조금 삼엄해지기 시작했다. 낙동강가 절벽 위 산길인 개비리 길이 끝나는 부분에서 낙동강이 남강과 합수한다는 것을 난생 처음 알고 나서다. 이때껏 나는 진주가 남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진주 촉석루 밑을 흐르는 남강이 당연히 남해로 바로 빠져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왜장을 껴안고 논개가 빠져 순절한 남강을 낙동강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부군 최경희 장군이 진주성이 왜군에 의해 함락된 책임을 통감해 남강 물에 뛰어들어 순절하자 부인 논개는 전승을 기념하려는 왜장들의 잔치에 기생으로 등록해 승전연에 참석한 뒤 왜장 게야무로 로구스케를 끌어 안고 그대로 남강에 몸을 던졌는데 그 시신이 결국 진주에서 시작하여 이곳 남지를 지나 낙동강 하류 지역인 창원에서 수습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낙동강에는 금빛 노을이나 구름이나 달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변영로가 노래했듯이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도 흐르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거룩한 분노와 불붙는 정열로 가득한 논개의 정신은 운문사 승가대의 120명 비구니 학인들을 낙동강으로 불러 내고 금산 간디학교의 국토 순례단도 함께 불러냈다.


도보순례길을 떠나기 전 기도하는 운문사 비구니 학인들

도보 순례는 운문사 비구니 스님의 참회의 말씀으로 시작 되었다.'부처님이시여! 오늘 저희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강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정녕 생명의 강이라는 것을, 비로소 그것이 진정 우리의 옛몸이라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참회의 기도를 올립니다. 중생을 다 건지겠다고 서원을 하고서도 만생명의 근원인 강물이 절명의 순간에 몰릴 때까지 신음소리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마삭줄 군락

개비리 길은 아름다웠다. 절벽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은 유장했고 마삭줄로 장식된 산길은 밟기가 아까웠다. 무림들이 도를 닦았을 법한 대나무 숲을 지나 이런 아름다운 길이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 산길이 포장도로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창녕환경운동연합에서 반대운동을 한다는데 그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순례단 앞의 빨간 깃발은 확포장 도로 노선을 표시하는 깃발이다

마침내 남강을 만났다. 무언가 뭉클했다.

남강이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

오후 쉬는 시간에는 금산 간디학교 학생들의 인사말이 있었다. '강을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면 이대로라도 두어 주세요. 더 망치지는 말아주세요'라는 취지로 인사를 하였고 노래를 부르랬더니 뜻밖에 교가를 불렀다.

'꿈 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어린 그들은 교가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운문사 비구니 학인들의 뒤를 따라 도보 순례를 하는 금산 간디학교 학생들

사십리 길을 다 걸은 후에 수경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하셨다.

운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운하 구상이 통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이 문제다. 우리 사회의 생명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운하가 저지된다 하더라도 헛거다'는 말씀은 도보 순례 시작에서 운문사 비구니 스님이 읽은 참회의 말씀과 통하는 것 같았다. 운하 백지화 운동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강을 알고 강의 생명을 알고, 금모래를 알고, 여울을 알고, 강에 흐르는 시와 노래와 달과 구름과 금빛 노을, 붉은 마음을 알아야 하겠다.

도보 순례단은 이십여일 후면 금강으로 간다.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가 태어난 전북 장수를 최상류로 하는 강이다. 그 쯤에서는 생명 탄생과 생명이 살아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한다. 남강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변영로의 <논개>를 읊고 싶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속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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