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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풍류

운문사랑 | 2008.04.04 13:14 | 조회 2019

조선의 사대부들은 집안의 정원(庭園)을 만드는 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간단한 나무 몇 그루 심는 정도였다. 아기자기한 정원 단장에 온 힘을 기울인 일본과는 이 점이 다르다. 조선은 국토의 70%가 산이다. 집밖에 조금만 나가면 경치 좋은 산세(山勢)와 계곡(溪谷)이 널려 있다. 이 풍광 좋은 계곡에다가 간단하게 정자(亭子)만 하나 지어 놓으면 주변 10리의 전망이 모두 내 것이 된다. 굳이 돈 들여서 집안에다가 정원 가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무라이의 나라였던 일본은 집 밖의 야외에다가 쉽게 정자를 만들 수 없었다. 방비가 허술한 야외의 정자에서 놀다가는 언제든지 반대파의 자객(刺客)으로부터 기습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진 안전한 곳, 물로 둘러싼 연못 가운데에다가 다실(茶室)을 만들었다. 닌자의 습격을 대비한 결과이다. 한국적인 풍류는 바위 계곡에 있는 '정자'라면, 일본적인 풍류는 집안 정원의 '다실'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자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3군데만 간추려보면 함양군 화림동(花林洞) 계곡에 줄줄이 포진해 있는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 동호정(東湖亭)이 있고, 몇 년 전에 불타버린 농월정(弄月亭)이 있었다. 계곡에 흐르는 물과 바위, 소나무와 같이 정자가 어우러져 있다.

무등산의 계류(溪流)가 내려오면서 풍광과 풍요를 만들어낸 담양군 일대에는 면앙정, 송강정(松江亭), 환벽당(環碧堂), 취가정(醉歌亭), 식영정(息影亭) 등이 있다. 당대 이름을 날리던 명사들의 별장들이었다. 안동 인근에는 진성이씨 대종가의 경류정(慶流亭), 예천권씨 대종가인 초간정(草澗亭), 그리고 봉화의 안동권씨 충재 고택에 있는 청암정(靑巖亭)이 있다.


경류정은 그 앞에 550년 수령의 뚝향나무가 지키고 있는데, 그 몸통이 마치 용이 올라가는 모양과 비슷하다. 가지가 옆으로 퍼져 있는 모습도 기품이 있다. 엊그제 '천석고황' 칼럼이 나간 뒤에 들어온 독자 제보에 의하면 '초간정'의 딸이 '청암정'으로 시집을 가서 산다고 한다. 충재고택의 차종부(次宗婦)가 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차종부의 외가는 '경류정'이라고 한다. 정자 대 정자의 교류이다.

조용헌 칼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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