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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스님 “부처님의 마지막 길을 쫓아가렵니다”

가람지기 | 2008.04.07 08:35 | 조회 2134

호진스님 “부처님의 마지막 길을 쫓아가렵니다”

왕사성에서 도반 지안스님에게~

모든 수행자들이 닮고 싶은 모범은 부처님이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 성지 순례를 꿈꾼다. 7년전 후학을 위해 동국대 교수 자리에서 물러나는 ‘아름다운 회향’을 보여준 호진스님이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도보 순례의 원력을 세웠다. 호진스님이 ‘마음과 뜻이 통하는 도반’ 지안스님(승가대학원장)에게 한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우리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호진스님<사진>의 편지 전문을 소개한다.

왕사성의 호진스님이 도반 지안스님에게

옆 창문을 열면 영취봉의 뒷산인 Vipula산이 약 500m 내 거리에, 그리고 서남쪽으로 약 2km 거리에 칠엽굴이 있는 Vaibhara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영취산 곁에서 하루 종일 부처님 언행이 담긴 초기경전을 읽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에 기쁨이 맑은 샘물처럼 고이기 시작합니다.

지안 스님!

그동안이나마 잘 계시는지요? 이제 그곳에는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하겠군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겠지요? 진달래 개나리가 핀, 눈앞에 한 폭의 깨끗한 그림이 떠오릅니다.

이곳은 20년 이래의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하기까지 합니다. 밤에 잘 때는 스웨타까지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낮에는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입니다. 3월까지는 견딜만 하답니다. 4~5월이 살인적 더위고 6월부터 좀 누그러진답니다. 4, 5, 6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는지 기대 반 두려움 반입니다. 5월에는 VISA연장 때문에 바깥으로 한번 나가야 합니다. 미얀마에 가서 ‘위파사나’체험을 한 달쯤 하고 올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이왕 비싼 비행기 값 물고 나가는 길에.

2월1일에 룸비니를 떠났습니다. 그곳을 떠나기 하루 전에 김형춘 교수님을 비롯한 교사불자회 회원들을 석가사에서 만났습니다. 나에게 법문(?)을 요청해서 간단하게 몇 마디 해야 했습니다. 떠날 때는 장학금까지 보태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이튿날 자동차를 한 대 빌려(기사 포함) 인도로 왔는데 3박 4일간 모든 경비를 합쳐 900루피(우리나라 돈으로 약 22만원)로 아주 간단하고 편리하게 이사를 했습니다. 책과 옷 등 작고 큰 가방 5개. 이것을 어떻게 버스나 기차로 천리길(500km)이 넘는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 혼자 힘으로.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이 문제가 나에게 제일 해결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봉을 한 사람 데리고 올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별로 많지 않는 돈으로 쉽게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고 앞으로 있을 3~4번의 이동에 대해서도 아무 걱정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Lumbini-Kusinagara-Vaisali-Patna-Rajgir 이런 여정에서 부처님 출가 때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아보거나 느껴보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였습니다.

2500여 년 전 히말라야 산골의 한 무명의 청년이 인도에 대한 지리적인 지식도 전혀 없었을 것이고, 무작정 혼자서 도망쳐 나오다시피 집을 나와 뚜렷한 목적도 없이 남쪽으로 스승을 찾아 헤맸을 터인데 그가 밟았던 길을 기억했다가 제자들에게 뒷날 이야기해서 기억하게 했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단지 한 곳 머리를 깎았던 아누이미니국(阿累夷彌尼國) 이란 이름만 경전에 나오고 있을 뿐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 게다가 계속 급하게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무슨 그런 추상적인 생각에 몰두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여정은 나의 연구 여행의 마지막이 될 10월경에 다시 꼼꼼히 답사할 계획입니다. 내 꿈은 꿈으로 끝날 확률이 크겠지만 그때는 10월 초, 부처님이 왕사성에서 안거를 끝내고 아난존자와 함께 북쪽으로 향하던 때입니다.

나 역시 왕사성 영취봉에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부처님의 마지막 길을 그대로 걸어볼까 합니다. 약 400km, 부산에서 서울 거리인데, 하루에 50리, 20km씩 걸을 수 있다면 약 20일, 길어야 한 달이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번에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내가 걸을 여정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더니(자동차 길가의) 마을들이 대부분 너무 초라해서 여관 같은 것은 두고라도 헛간 같은 곳(하루저녁 누울)도 없을 것 같은 곳이 대부분이고 음식 사먹을 곳도 없을 마을이 대부분인 것 같아 이것이 문제일 것 같았습니다.

이 여행이 내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정말로 근사할 것입니다. 이 계획에 앞서 보다 짧은 거리의 여행을 6월 중순경에 먼저 해볼까 합니다. Bodhgaya에서 Sarnath까지의 240km를 2주일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가의 길, 초전법륜의 길, 열반의 길을 모두 부처님이 했던 것처럼 나도 발로써 해 볼 수 있다면 했는데…. 출가의 길은 이미 공수표로 끝났고 초전법륜의 길, 열반의 길, 두 길도 책상 앞에서 편한 자세로 생각하는 것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집니다.

요즈음도 거의 책상 앞에서만 지내고 있어 좀 답답합니다. 1주일 만 지나면 지금 정리하고 있는 <사분율>도 끝나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사진> 영취산 향실.

이곳 왕사성에 내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신왕사성 동쪽 Bengal Vihara입니다. 미얀마 Vihara를 담장 하나로 이웃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 절은 10년 전 방글라데시 스님이 창건한 절인데, 지금은 40대 초의 스님 한 사람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120~150명의 순례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3동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내가 거처하고 있는 방은 세 건물 3층 옥상에 있는 두 개의 방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방은 이절의 모든 방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시피 하기 때문에 (옥상이므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절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곳입니다. 종일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혼자 지낼 수 있습니다. 옆 창문을 열면 영취봉의 뒷산인 Vipula산이 약 500m 내 거리에, 그리고 서남쪽으로 약 2km 거리에 칠엽굴이 있는 Vaibhara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영취산 곁에서 하루 종일 부처님 언행이 담긴 초기경전을 읽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에 기쁨이 맑은 샘물처럼 고이기 시작합니다. 이번 여행을 계획했을 때는 제법 많은 걱정을 하고 망설임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잘 한 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 말기에 이와 같은 여행, 이와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자들 가운데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와 같은 시간과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때로는 내 자신에 대해 긍지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하겠지요? 500달러 주고 두 달간 숙식을 하기로 했지만 아침과 저녁 식사는 내 방에서 빵, 과일, 커피로 글자 그대로 적당히 때우고 점심은 아래층 식당에 내려가 주지스님과 둘이서 먹습니다. 시장이 10분 거리에 있기 때문에 2~3일에 한 번씩 빵과 과일을 사러 갑니다.

왕사성 라즈기르는 2500년 전의 대제국 Magadha의 수도였던 고도(古都)중의 고도지만 지금은 인구 10만 명의 아주 초라하고 가난한 시골도시입니다. 1981, 1992, 1995년 세 번을 이곳에 왔었지만 이곳은 거의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불교의 중심 교리인 무상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 곳인가 봅니다.

이곳에서 3월 말까지 지낼 계획이지만 심한 소음 때문에(호텔 온천장 바로 곁으로 통하는 도로에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어 조금 일찍 떠나려고 합니다. 아직 라즈기르를 꼼꼼하게 답사하지 못했습니다. <아함경><사분율>의 정리가 끝나면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불적지(佛跡地)를 답사하자는 것이 나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소식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환절기에 건강에 주의하시기를.

2008. 2. 19. 호진

[불교신문 2414호/ 4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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