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보물소개

보물들


금당 앞 석등 (보물 제193호)

운문사 금당 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보물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방형 지대석 위에 상대·중대·하대석을 갖춘 기단부와 화사석, 옥개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륜부에 보주가 놓여 있다. 절제된 문양의 조식으로 기단부와 몸체의 비례 및 균형이 조화를 이루며, 부석사 석등 이후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등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현재 금당 앞에 자리하고 있으나, 1935년 무렵에 촬영된 사진에 의하면 작압전 뒤로 석등 1기가 찍혀 있어 언제 현재의 위치로 이동되었는지 알 수 없다.


운문사 동호銅壺 (보물 제208호)

운문사 동호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항아리 모양의 불교 용기로, ‘감로준甘露樽’이라고도 부른다. 용도는 감로수를 담아 놓는 의식용 항아리일 가능성이 높으며, 높이는 55㎝, 입 지름은 19.5㎝, 몸통 지름은 31㎝로 보물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고려시대 불교 용기로서는 향로, 정병 외에 용도나 형태에 있어 유일한 예로 뚜껑의 높이가 전체 높이에 비해 다소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나, 안정된 비례감과 명문을 통해 고려시대 불교유물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고려 후기의 문인 임춘林椿의 시문집인 서하집이 이 감로준에서 나왔다.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 제316호)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보물 제3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귀부와 이수는 없으며 세 부분으로 쪼개진 비신을 붙인 다음 철로 된 지지대로 고정하여 지탱시켜 놓았다. 비신의 높이는 230㎝이며 폭은 90㎝이다.

건립 연대는 비문이 파손되어 알 수 없으나, 원응국사가 입적한 다음 해 인종이 국사로 봉하고, 윤언이尹彦頤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전후로 추정된다.

그리고 원응국사 비각 정면에 걸려있는 현판에 의하면 비각이 무너졌으나 다시 복구할 여력이 되지 않자 관찰사가 탄식하면서 비용을 보태주어 1877년 비각을 새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후 1963년 새로 고쳐지었다.


운문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7호)

석조여래좌상은 보물 제317호로 현재 운문사 작압전에 봉안되어 있다. 높이는 약 63㎝의 작은 불상이지만, 광배와 좌대를 모두 갖춘 모습이다. 고려시대 이 석조여래좌상에서는 다량의 복장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865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납석제 사리호와 통일신라시대의 사리병, 옥구슬 등이 포함되어 있어 석조여래좌상의 조성 시기를 9세기로 올려 보는 견해도 있다.

불상은 양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있는 통견의 형식이며, 수인은 왼손의 손바닥을 펴서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늘어뜨린 형태의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보물제 318호)

석조사천왕상은 작압전 내부에 보물 제317호인 석조여래좌상과 함께 봉안되어 있으며, 보물 제 318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상으로 돌기둥에 세운 것처럼 보인다 하여 사천왕석주로 더 알려진 조각상이다.

석조사천왕상은 작압전 내부에 사천왕상 1구씩이 조각되어 있는데, 오른쪽에는 다문천왕과 지국천왕, 왼쪽에는 광목천왕과 증장천왕이다.

현재 이런 형태의 석주형 사천왕상은 판석 형태의 석재에 사천왕상을 조각한 경주 석굴암과 유사하지만 그 배치법이나 건축구조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조각적으로 양감이 뚜렷하고 세련된 조각수법으로 보아, 석굴암 사천왕상을 계승한 9세기 한국 불상 조각의 흐름 아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678호)

비로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으로 보물 제678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규모와 양식이 동일하다. 탑의 높이는 591㎝이다.

상층 기단의 각 면에 탱주와 우주가 새겨져 있는데, 탱주로 분할된 여덟 면에는 팔부신중이 1구씩 조각되어 있다. 이런 부처님을 외호하는 사천왕·팔부중·십이지신장 등의 표현은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특징으로, 운문사가 창건 이후 중창시기 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대규모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기단부는 일제강점기에 훼손이 심하여 보수했는데, 이때 팔부중상의 일부가 새로운 석재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운문사 비로전 (보물 제835호)

운문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 8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으나, 통칭하여 비로전이라고 부른다.
현재의 대웅보전을 짓기 전, 운문사 신앙 공간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문화재청 등록 당시 “운문사 대웅보전”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에 옛 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며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측에는 삼장탱화를 봉안하였다.


운문사 비로자나삼신불회도 (보물 제1613호)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는 후불탱화로 1755년 임한任閑을 수화사로 하여 19명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현재 보물 제16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신불회도는 법신 비로자나불과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의 설법 장면을 표현한 불화를 말한다. 화면은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삼신불, 하단에는 협시보살과 사천왕 그리고 상단에는 설법을 들으려는 십대제자와 성중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운문사 삼신불회도는 3단으로 표현한 안정된 화면 구성, 성중들의 위계와 질서를 잘 드러내고 있는 균형 잡힌 인물의 표현,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하되 다소 밝은 색감으로 활달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특징 등에서 18세기 불화의 격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운문사 비로전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 (보물 제1817호)

비로전(대웅보전) 후불벽 뒷면에 나란히 앉아 있는 관음보살과 달마대사를 그린 벽화로, 보물 제1817호로 지정되어 있다.

후불벽 뒷벽에 관음보살도가 있는 예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여수 흥국사 대웅전, 순천 동화사 대웅전,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 등 10여점이 알려져 있으나 관음보살과 달마대사가 한 벽면에 나란히 표현된 것은 운문사가 유일하다.

이 벽화는 두 가지 다른 주제를 한 화면에서 다루고 있지만, 관음보살의 보타락가산과 달마대사의 소림굴이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공간임을 강조한 구성력이 돋보인다.

비록 벽화의 제작 시기는 전하지 않지만, 운문사의 대웅전이 중창되는 1653년에서 1718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운문사 처진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180)

천연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된 운문사 처진 소나무
주변의 인공적인 압력 없이도 늘어져서 넓게 자라는 나무로 유명하다. 수령 500년에 이르는 이 소나무는 어느 선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꽂아둔 것이 뿌리를 내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 막걸리 12말을 희석하여 영양제로 부어준다.
보물 제 316호인 원응국사비와 함께 운문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3기의 비석이 모여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