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암자안내


내원암(內院庵)


내원암(內院庵)의 최초 창건주는 원응국사로 운문사 중창 연대와 같다.
1694년 설송 연초대사가 중창하고, 1831년 운악화상이 중수하였다.
산령각은 유긍파 스님이 지었다. 설송스님이 주석하면서, 내.외저 강석을 열어 후학들에게 학문을 전수하였다.
초대 원주는 유섭스님이었고, 1992년 이후 오늘까지 원주 재문스님이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도량의 모습을 일신하였다.

최초 창건주는 원응국사(圓應國師)이며 운문사 중창연대와 같다.
중창은 1694년에 설송 연초대사가, 중수는 1831년에 운악화상(雲岳和尙)이 중수하였다고 전하여 온다. 산령각은 유긍파(兪肯波)스님이 지었다고 한다.


내원암은 운문사 부속암자 중 제일 오래된 곳이고 조선후기에는 유명한 설송스님이 주석하면서 내 · 외전 강석을 열어 후학들에게 학문을 전수하였다.
그때는 항상 백 여명의 학인들이 운집하여 수학을 하였다고 한다.


설송 연초스님은 성은 백씨이고 자인현(경북 경산) 출신이며 13세(1688)에 운문사에 출가하여 처음에는 석제를 스승으로 섬기고 뒤에 환성지안에게 참학했다.
이 두 스승의 법을 함께 전해 받고 청허 휴정(淸虛 休靜)이후 갈라졌던 두 파를 하나로 통합했다. 내전(內典)을 널리 보아 공부가 깊었으며 강설을 할 때는 학자들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만년에 학인들을 사절하고 참선을 하다가 조선 영조 26년(1750) 5월 1일 나이 75세, 법수 62세로 입적했으며 다비한 뒤에 사리를 통도사와 운문사에 분장했다. 4년 뒤 이천보가 지은 비가 운문사에 세워졌다. 이 스님이 계실때는 사세가 상당히 강했으나 그 뒤 차츰 약해지다가 지금은 운문사 부속암자 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다.
운문사의 부속암자들은 거의 새로 지어져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이곳 내원암도 옛 건물의 형태는 이제 찾아볼 수 없으나 구전으로 전하는 말은 5칸 2줄로 인법당으로 있었으며 그 앞에 누각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 중 지금 사무실로 쓰고 있는 건물은 약 70-80년 전에 새로이 암자를 지을 때 옛터를 낮추고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이 건물은 법당을 새로 지은 후 요사로 쓰고 있으며 지금은 동향으로 있으나 원래는 남향으로 있던 것을 법당과 구색을 갖추기 위해 집을 헐지 않고 그대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기둥과 주초를 보면 옛날 모습이 아니고 주초가 사각 평면으로 되어 있다.
1950년대에 한국불교의 정화가 이루어지고 운문사가 비구니 도량이 될 때 내원암도 비구니의 처소가 됐으며 초대원주는 유섭스님이었다.
현재의 제문스님이 1992년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무량수전, 멱우선실, 삼성각, 요사 등을 새로이 지었으며 법당 앞 삼층석탑은 1998년 4월 초파일을 기해 세우고 塔內에 千塔을 봉안하였다.
무량수전은 5칸 3줄로 45평으로 지어졌으며 내부는 닫집과 탁자도 조각을 하여 아름답게 치장을 하였다. 무량수전 내부에는 아미타불상(경주옥석으로 조성)이 있는데 1997년 경북중요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좌우협시보살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청동으로 새로이 조성하여 모셨다. 본존불은 높이 90㎝, 폭 60㎝, 앞뒤넓이 40㎝이다. 후불탱화는 높이 320㎝, 길이 215㎝, 제작년도는 불기 2539년(1995)이다. 탱화 내용은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팔보살, 십대제자, 사천왕상 등이 삽화되어 있다.
내원암은 운문사 부속암자 중 유일하게 독성각이 따로 없는 곳이다. 내원암 약수는 청도의 유명한 약수 중 하나이다. 세월의 변천과 함께 수돗물 사용이 늘어나면서 약수의 개념이 사라지고 생수의 개념이 부각되어 약수도 차츰 잊어져 가고 있으나 그래도 옛부터 찾던 사람은 끊임없이 찾아온다고 한다.
주소 :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39-117(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803)
TEL : 054-372-4400